25일로 국정 2기를 맞는 김대중 대통령은 의욕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연일 경제정책조정회의 국가경제자문회의 안보관계장관회의 등 내각의 팀별 회의 등을 주재하며 국정 2기의 큰 가닥을 잡느라 여념이 없다.청와대 관계자들은 “대통령이 다시 고삐를 쥐었다”고 말한다. “대통령이 매사 자신감과 의욕을 보인다” “요즘 분위기는 소소(笑笑)”라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김대통령을 잘 아는 외부의 지인들은 “의욕과 자신감의 이면에는 외로움과 고단함도 있다”고 전한다.
최근 김대통령과 독대를 한 인사들은 “웬만한 역경에도 꿈쩍않던 대통령이 ‘힘들 때도 있다’는 말도 하더라”고 말했다. 재야의 한 원로인사는 “몸이 힘들다는 게 아니라 마음이 힘들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이들은 “김대통령이 몸을 던지는 각료가 별로 없는 상황,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남북 정상회담까지 성사 시켰지만 평가는 인색한 현실, 소수정권의 한계를 파고드는 집단이기주의에 섭섭함과 피로를 느끼는 듯 했다”고 말했다.
실제 김대통령 자신도 개혁의 피로감, 집단이기주의, 도덕적 해이를 자주 언급한다. 사회현상을 분석한 얘기지만 그 행간에는 김대통령 자신의 심경이 묻어나고 있는 것이다.
여권의 한 핵심인사는 “4·13총선후 김대통령의 가슴 한쪽이 뻥 뚫렸다”며 “원내 1당이 되지 못한 아쉬움에도 그랬지만, 열심히 영남을 방문하고 예산을 집중 지원했지만 한 석도 얻지 못한 것은 큰 충격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총선후 김대통령이 오랫동안 자신을 보필해온 측근들을 밤늦게 관저로 부르고 옛 지인들을 자주 만나는 데서 ‘허허(虛虛)한’ 심경의 일단이 읽혀진다.
하지만 김대통령은 허전함에만 머물지 않고 있다. 일을 챙기는 농도, 남북관계에 임하는 열정을 보면 김대통령의 에너지는 여전하다. 다만 과거처럼 세세한 것까지 모두 챙기지는 않고 있다.
남북관계와 외교, 경제의 방향 등 큰 문제에 대한 원칙을 제시한 뒤 세부현안은 주무장관 등에게 맡기면서 보다 여유롭고, 보다 크고, 보다 순리적으로 국정을 운영해 나간다는 변화를 택하고 있는 것 같다.
이영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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