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은 없다? 재계 총본산으로서 한때 ‘재부(財府)’역할을 했던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정체성의 위기를 맞고 있다.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경제현안에 대해 나름대로 대안을 내놓고 정부와 논쟁을 벌였던 과거의 모습이 갈수록 사라지고 있다. 특히 재벌이 IMF체제 진입의 ‘주범’중 하나로 꼽히고, 강력한 개혁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전경련의 위축은 가속화했다.
■우선 두드러지는 것이 조직내 이직의 급증이다. 재벌 입장을 대변하면서 ‘전경련의 입’역할을 담당했던 공병호 자유기업센터소장에 이어 유한수전무도 곧 전경련을 떠난다.
150여명 사무국 직원의 10%가 넘는 20여명이 최근 1-2년 사이 직장을 옮겼다. 빅딜과 관련해 서로 감정이 상한 탓인지 삼성 현대 LG 등 3대 그룹은 올들어 회장단 회의에 한번도 참석하지 않았다. 회비도 잘 걷히지 않고, 회원수도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
■전경련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재계 대표로서의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떠나는 사람의 지적이 가장 정확하다고 했던가.
유 전무는 “전경련이 4대 그룹으로부터 ‘왕따’ 당하고 있고, 재벌 2세는 따로 놀아 존재 의미 자체를 걱정해야 할 판”이라며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지도력을 갖춘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도 재계도 입만 열면 ‘시장’을 이야기한다. 경제 운영에 있어 정부의 기본 철학은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이고, 재계는 경제활동이 ‘시장 원리’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그 의미는 결코 같지가 않다.
또 ‘우리에게 진정한 시장이 존재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시장에 대한 사회적으로 합의된 개념의 정립이 요구되고 있는 시기다. 때문에 전경련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 보다 절실하다.
일방적인 싸움은 재미가 없고, 결과 또한 시원치 않기 때문이다. 전경련이 빨리 제 자리를 찾기를 바라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내일까지 열리는 전열 재정비를 위한 전경련 자체 워크숍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다.
/ 이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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