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것에 대한 연민… 그로 인해 깊어진 '내면의 우물'서해의 구부러지고, 작은 언덕을 넘어 지나 길은 시인 이윤학의 고향으로 간다.
바다에 묻히기 싫어 악을 쓰고 튀어오른 투구봉(143㎙) 자락에 자리잡은 충남 홍성군 서북면 양곡리로 가는 길은 621, 614번이라 번호를 달았다.
그러나 그 번호가 곧 특별한 풍경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울창한 아카시아 숲은 속을 드러다보지 못하게 하고, 숲으로 난 길을 지워버렸다.
관련기사
'만해시인학교'에서 이윤학
그래서 쉽게 지나쳐버릴 그속을 이윤학은 헤치고 들어간다. 그 속에서 그의 시들은 몸을 만든다.
개구리 달팽이 파리 잠자리 거미 쥐며느리 하루살이 민들레 갈대꽃 며느리밥풀꽃 콩꽃에서 구더기까지. 그 작은 몸들이 뒤척인다.
이윤학에게 그것은 생명의 환희도, 삶의 기쁨도 아니다. 그가 시적 자아로 받아들이는 그 사물들은 비극적 상황과 고통과 절망의 신음의 실체들이다. 버려지고 깨어지고 낡아버린 것에는 시간이 묻어있고, 추억이 스며있다.
▥ 폐허를 건너가기
‘그 돈사(豚舍)는 풀밭으로 변해 있네/ 사료가 담아놓던, 저 커다란 항아리는/ 금 가 있었네/ 추억은, 폐허를 건너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닌가’(‘한낮의 풀밭’에서). 그에게 추억은 폐허이다.
그 페허를 건너기 위해 그는 추억한다. 이제는 버려진 고향의 곳곳을 그는 마치 죽음의 흔적처럼 들춰낸다.
‘우거진 잡초 사이에 우뚝우뚝 솟아있는 콘크리트의 뼈대들/ 일본식 나무집이 수풀에 걸려 까맣게 썩고 있는/ 폐광촌의 노을…’(‘판교리1’에서)이 있고, ‘떠나려는 노을이 붉어지는 집, 창문에/ 거꾸로 씌어진 글씨를 읽는다/ 먼지의 집’(‘먼지의 집’에서)이 있다.
언제나 가장 멀리에 있는 ‘염전’의 하늘과 기둥과 지붕만 남아 있는 검은 ‘소금창고’도 있다.
폐광도, 먼지의 집도 그곳에서 곡괭이를 들었던 사람들, 기침을 하며 술로 목을 적시던 덥수룩한 수염들처럼 세상을 훌훌 털어버리지 못했다.
60년대까지 아버지의 노동을 수탈했던 금광은 아직도 하늘과 땅에서 100년의 세월을 부등켜 안고 있었다.
머리가 잘린 탑은 이제 앙상한 다리마저 구부러져 굴속으로 몸을 누이고, ‘바다 가까운 곳에서 끝났다’는 땅굴에서는 반짝이는 돌가루 대신 원동기가 하루종일 호스를 쳐박고 물을 길러낸다.
하루의 품삯을 계산하던 사무실에는 무슨 생명을 말리는지 열을 뿜으며 건조기가 돌아가고, ‘저 환한 창고안에’는 ‘떨어져 나간 철장 속으로 들판이 (세월만큼이나) 조금 들어와 있었다.’
들어온 것은 들판만이 아니다. 길가에 홀로 버려진 ‘먼지의 집’에는 ‘빈 병에도 채워지는 먼지’가 있고 ‘들어가 안 나오는 바람이 있다.’노을이 깨진 창문을 기웃거리다 간다. 이윤학은 그 노을이 “끔찍하다”고 했다. 초등학교 시절, 그는 그 집앞을 지나며 광부들이 몸과 삶의 먼지들을 씻어내려 마신 술이 흔들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은 흐린 날이면 아침부터 먼지 대신 술을 마시려 몰려들었고, 지금은 모두 별볼일 없이 죽어갔다.
노을이 ‘붉은 등’처럼 잠시 머물다 갈 때 이윤학은 그들의 영혼이 한꺼번에 이곳을 다녀간다는 사실을 안다.
바로 옆집에서 가게를 하며 그 쓸쓸한‘먼지의 집’을 지켜보는 30대 후반의 딸이 고향사람인 시인을 보고도 무심하다.
폐광을 지나 수용포나루로 간다. ‘돌가루를 뒤집어쓴 길’‘들깨 냄새 지독한 길’‘침묵 속으로 끊어질듯 나 있는 길’이다.
그 길을 가며 시인은 부스러진 차돌같은, 가루소금이 되고 싶었다. 문 없는, 상처속으로 스며 들어가고 싶었다.
염전 앞에서 그는 가뭄을 느꼈다. 입가에 허옇게 번지는 마른 침. 차돌속 같은 캄캄한 침묵으로 상처를 숨기고 살아온 그의 마음속으로 검은 소금창고가 들어왔다.
기둥에 매어진 염소가 울고, 바람이 그 울음을 쓸어 바다로 보내던 소금창고는 무너졌다.
염전은 갈대밭이 되었다가 대하양식장으로 바뀌면서 다시 바닷물을 받아들였다. 물은 더 이상 돌(소금)이 되지 않아도 된다. 대신 하얗게 새우들이 건져질 것이다.
▥ 동물속으로 들어간 시인
새우는 그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파리는 한시라도 배고픔에서 벗어날 수 없고(‘벗어날수 없다’에서), 무너지는 담을 떠받치고 있는 가느다란 나뭇가지의 그 짐은 덜어지지 않는다(‘견딜수 없는 짐을 지고’에서).
중나무 빨랫줄에 숨통이 조여 캑캑거리고, 빨래들은 집게에 물려 펼럭펄럭 소리를 지르며 말라가고 있고(‘중나무’에서), 갈대들은 흰머리털이 다 빠지도록 머리를 흔들고도 이직도 기억을 지우고 있다(‘나무다리 앞에서’에서).
어디 이 뿐이랴. ‘버리는 것이 빼앗기는 것보다 어려운 줄 아는 제비떼는 하늘 높이 까맣게 날아가지만’(‘제비집’에서) ‘언젠가 살아본 곳이라는 듯 다시 찾아와 재잘거린다’(‘제비’에서). 흰 혀를 쏟아놓고 뒤집혀 죽은 ‘개구리’는 ‘영혼에 묻은 불순물을 털어내는 것처럼/ 온몸이, 사정없이 떨렸다.
감지 못한 눈이/ 흰자위로 가득찰 때까지. 대나무 고챙이에 끼어 말라가는 망둥이는 돌아갈 곳이 없다. 바닥에 뒤집힌 무당벌레는 등뒤의 화려한 무늬가 짐이 되어 그 짐속에 갇혀 발버둥치고 있다(‘화려한 유적’에서).
마을 앞‘저수지’에는 지금도 산들이 거꾸로 박혀 있다. 그 저수지 바닥까지 간 돌과 풀이 상처처럼 진흙속으로 비집고 들어가 섞여 있다.
그 풀속에 알을 낳으려는 장수잠자리. 그 잠자리를 노리는 개구리, 개구리를 삼키려는 뱀이 한낮의 더위를 서늘하게 한다.
길가 죽은 새 몸에서 기어나온 구더기는 너무 오래 갇혀지냈기에 줄 지어 탈출하려 하지만 날개가 없고, 저수지에서 잡힌 붕어는 물밖으로 나가고 싶어 눈이 붉게 물들지만 하루도 살지 못하고 물위에 떠오른다.
말을 더듬어 침묵했고, 혼자 중얼거리던 시인이었지만 말을 미워하지 않았다. 대신 그 말로 작은 동물들의 끔찍한 고통과 상처, 운명과 죽음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언제나 그의 몸속으로 되돌아 오고, 그는 그 상처를 파먹었다.
“반대로 얘기하고 싶었다. 더 아픈 것들을 보여주면서 그래도 이만큼은 아니니까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감춰진 것, 잊고 있던 것까지 끔찍스럽게 드러내게 한다. 자학일 수도 있다.”
그 상처로 이윤학은 신음한다. 그에게 그 소리(시)만큼 긴 기도문은 없다. ‘쥐며느리’처럼 ‘상처를 견디기 위해/ 악착같이 몸을 구부리고 있다/ 어디로 가란 말이냐/ 꼼짝도 하지 않는다.’
홍성= 글·이대현기자
leedh@hk.co.kr
*'만해시인학교'에서 이윤학
"고향의 기억으로 시의 길 찾아"
시심이 가득해서일까. 아니면 산사의 불심에 젖어든 것일까. 모두 마음을 열고, 귀를 열고, 눈을 연다.
매미소리조차 시의 울림같다. 격식도 없다. 고은 교장부터 그냥 바닥에 편하게 앉아 ‘사랑방 대화’를 시작한다.
‘시창작 강의’라고 하지만 시인으로 살아가는 고은 교장의 마음의 고백이다. “시인은 죽어 무덤속에서도 시를 쓴다.
시인이 살아서 시에 충실해야 하는 이유이다. 시의 영혼은 푸르다. 그 푸르름으로 노년에 맑은 소리 몇 마디 남겨 놓으면 얼마나 좋을까. ”
10일부터 13일까지 수덕사에서는 제5회 만해시인학교(주최 시와시학사)가 열렸다. 올해부터 백담사에서 수덕사로 자리를 옮겼다.
속세를 버렸기에 어느 곳인들 머무는 바가 있을까 마는 만해 한용운에게 백담사는 정신의 고향이오, 수덕사 가까운 홍성은 육신의 고향이다.
2층 대법당에 둘러앉은 시인과 시를 사랑하는 100여명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다.
그 더위를 쫓듯 시인 임영조의 한마디가 법어처럼 귓전을 울린다. “시는 참선입니다. 스스로 깨우쳐 나가야 합니다.”
만해와 동향인 이윤학은 시인학교의 지도시인으로 참가했다. 시의 길을 가르쳐 주는 시인. 그는 침묵했다.
시의 길이란 무엇인가. 어디에 있는가. 수덕사를 찾듯, 시인학교를 찾듯 시의 길을 찾을 수는 없다. “나도 모른다. 내 마음과 고향의 기억을 이정표 삼아 갈 뿐”이라고 했다.
그에게 산다는 일은 바닥없는 갈증이고, 그 갈증을 풀기 위해 몸 속에 파놓은 우물을 찾는다.
지난 3월 네번째 시집 ‘아픈 곳에 손이 자꾸 간다’ 를 내면서 이제 그 우물을 그만 퍼먹여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도 아직은 다른 길을 찾지 못했다.
11일 밤 홍성 소나무숲 푸른쉼터에서 열린 ‘만해추모 시낭송 및 작은 음악회’에서 이윤학은 그 우물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낭송하고는 우물이 있는 서북면 양곡리에 있는 고향집으로 향했다.
제 얼굴에 침 뱉어 논 뱀딸기를 보았다/ 대낮부터 붉은 얼굴. 홍시같은 얼굴을 한/ 뱀딸기를 보았다/ 한평생 부끄럽게 살다가는 얼굴/ 한평생 부끄럽을 타다가는 얼굴/…/ 더러워/ 부끄러워/ 안엣 것들을 내다버린/ 뱀딸기 열매에서는/ 붉게 익어터진 부분에서도/ 햐얀 즙이 나왔다/ 까슬까슬/ 뱀딸기 열매에서는/ 무수한 사리가 나왔다.(‘얼굴’에서)
● 연보
▲1965년 충남 홍성 출생 ▲1990년 동국대 국문과 졸업.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제비집’ ‘청수부’가 당선돼 등단 ▲시집‘먼지의 집’(1992년) ‘붉은 열매를 가진 적이 있다’(1995년) ‘나를 위해 울어주는 버드나무’(1997년) ‘아픈 곳에 손이 자주 간다’(2000년) ▲현재 안양예술고 강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