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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이산상봉 뒤의 '憂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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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이산상봉 뒤의 '憂國'

입력
2000.08.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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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쯤 뒤면 내가 공직에서 법조계로 ‘9·28 수복’을 한 지 1년이 된다.중책을 벗고나니 좀 한가하냐고 묻는 분도 더러 있다. 그럴 때면 “저는 조상 때부터 ‘한가’(韓哥) 아닙니까”라고 응답한다. 그리고선 이렇게 덧붙이기도 한다. “공직에 있을 때는 매일 애국을 해야 했지만, 지금은 우국만 하면 되지요.”

마침 학술행사 참석차 서울에 온 중국 출판과학연구소 여민(余敏) 소장에게 이 말을 했더니, 그 자리에서 이런 글귀를 적어 주는 것이었다.

‘유애재유우 유우필유애(有愛才有憂 有憂必有愛)’. 사랑이 있으면 비로소 걱정이 생기고 걱정을 하는 곳에 반드시 사랑이 있다는 뜻이라 했다. 그러고 보니 사랑 애(愛)자와 근심 우(憂)자는 복판에 마음 심자를 품고있는 데다가 글자 모양도 아주 닮아 있다.

지난 6월 사랑엔 근심 걱정이 따른다는 이치를 경험할 기회가 찾아왔다. 남북 두 정상의 역사적인 평양상봉 장면을 보면서도 감격의 한 자락에 걱정이 스쳐갔다.

온 세계를 뒤흔들어 놓은 저 거동이 단발성 이벤트로 그치고 말면 어쩌나 싶었다. 6·15 남북공동성명이 나오고 나서는 그 후속 실천이 따라야 할 터인데 하는 걱정. 8·15 이산가족 상봉단이 남과 북으로 오갈 때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사소한 돌발사고 하나라도 없어야 할 터인데’ 하는 걱정이었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감격과 눈물과 기쁨으로 시작되어 기막힌 사연과 장면들로 온 세상을 감동시키면서 큰 탈 없이 끝났다.

북한의 고려항공기가 김포공항에 착륙하고 북에서 온 동포들이 환한 얼굴로 손을 흔들며 입국할 때부터 3박4일의 일정을 마치고 버스에 올라 차창 밖을 향해 다시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면서 ‘잘 끝나가는구나’하는 안도의 마음이 스며들었다.

반세기 넘은 대결 끝에 막 시작된 남북의 화해와 교류에 크고 작은 장애가 어찌 없을까마는 오직 큰 흐름과 방향이 중요한만큼 웬만한 갈등이나 견해차는 대국적인 관점에서 앞으로도 남북이 서로 이해하고 극복해나가는 자세를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1985년의 전례를 보면 남과 북은 이산가족 상봉 기간중에도 서로 감정적 트집잡기와 비방을 멈추지 않았다. 화해정신보다는 대결의식이 앞서기는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그때에 비하면 이번에는 남과 북의 정부와 언론이 많이 달라졌다. 상대방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배려와 더불어 그야말로 인도적인 관점에서 같은 핏줄의 정을 부각시키는 대신 ‘탈정치’를 이루어냈다.

그렇다고 아주 걱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상봉’의 감동과 열기가 가시면 잠시 주춤했던 국내 정치싸움이 재연되어 남북화해 분위기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나 않을까하는 걱정이다. 국내 정치의 대결 양상이 모처럼 조성된 남북 사이의 화해 분위기를 해치는 데까지 확전되지 않아야 한다.

이른바 초당적 협조가 가시화하는 것은 비단 정부만이 아니라 야당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지금은 마치 오랫동안 막혔던 봇물이 터진 형국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다 해결하라는 식의 성급한 요구는 지나치다.

서로 상대방의 체제와 입장을 이해하는 가운데 합의점을 끌어내야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제 남북 합쳐서 겨우 200명의 동포가 오가며 혈육 상봉을 했을 뿐이다. 아직도 애타게 만남의 그날을 고대하는 그 많은 이산의 동포들을 생각해서라도 정부의 남북화해정책은 국내정치 차원의 계산을 떠나 여야 각계가 함께 밀어주는 것이 옳다.

대통령의 입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산가족의 애끓는 심정, 아니 온 겨레의 염원을 받드는 길이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한승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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