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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탐친' - 핏줄을 찾아서

입력
2000.08.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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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을 하더라도 가족은 소중하다.’지난 97년 다이애너 왕세자비가 불의의 사고로 타계한 후 영국의 인디펜던트지는 가족에 대한 국민 여론조사를 인용, 이렇게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이혼 건수는 1970년에 비해 거의 3배에 이르지만, 이것이 결코 지금 우리의 전체 가족상은 아니다’면서 영국인의 가족에 대한 사랑의 증거를 길게 열거했다.남북 가족 만남의 슬픈 행렬을 보면서 우리는 이말을 ‘재혼했더라도 가족은 소중하다’고 고쳐 말하게 되었다. 한 예로 이선행 이송자씨 부부는 북에서 결혼하고 남으로 내려와서 재혼한 뒤, 아이를 낳지 않고 32년을 동고동락해 왔다. 그들은 평양에서 북의 가족을 각각 재회한 후 북쪽 두 가족들도 함께 만나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하는 ‘작은 통일’을 이루었다.

최근 미국 여성 권투선수의 친부모 찾기 또한 눈문겨웠다. 한국 어린이로 미국 가정에 입양됐던 킴 메서(34·한국명 백기순)는 ‘친부모를 만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간직한 채 일본 선수와 결승전을 갖기 위해 서울에 왔다.

모국에서 국제여자복싱대회 라이트 플라이급 세계 챔피언에 오른 킴의 미소짓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끝내 친부모를 찾지 못하면서도 그는 부모를 원망하지 않았다. “내가 고아가 됐을 때 부모님은 최선을 다 했을 것이다. 오직 만나고 싶을 뿐이다.”

남북 간 혈육 찾기의 비극 제1막 제1장이 막을 내렸다. 가족을 만난 기쁨을 어찌 필설로 다 형언할 수 있으랴. 하지만 기쁨은 순간에 불과했고 그리움은 또다른 아쉬움과 슬픔으로 남았다. 그들에게 재회를 기약하기 쉽지 않은 이별이 시작되었다.

쓰라린 재(再)이별 앞에서 한스런 눈물이 앞을 가릴 뿐이다. 이들의 눈물을 보며 고려시대 최고 시인인 정지상의 시 ‘대동강’을 떠올리게 된다. 이 시의 ‘대동강’을 ‘한강’으로 바꿔 불러도 어색하지 않다.

정부 추산에 따르면 남쪽의 이산가족 수는 767만여명이고, 이번에 북의 가족을 만나기 위해 신청한 사람은 7만여명이었다. 겨우 100명과 북측의 100명이 가족을 만난 것이다.

그것조차 만시지탄일 뿐이다. 여기서 같은 분단의 삶을 살았던 중국·대만인과 동·서독인의 지혜로운 정책을 생각하게 된다. 중국과 대만에는 이산가족 찾기인 ‘탐친’(探親·중국어 발음 탄친)이 있다. 중국과 대만의 이산 가족은 대륙의 개방정책에 맞춰 1987년부터 시행돼온 탐친행사가 있기 때문에 우리보다 행복하다.

지난 96년 KBS 추석특집 프로로 방영됐던 중국·대만의 탐친 역시 국공내전에서 비롯된다. 이 프로는 탐친에 동행하며 세 가지 사례를 보여 주었다. 대륙으로 눈 먼 형을 찾아가 조카에게 돈을 주고 돌아오는 ‘일흔 두살의 귀향’이 첫째 이야기였다.

다음은 대륙에서 반동분자의 아들로 몰려 박해를 받았던 50대 남자가 대만에서 재혼한 아버지를 찾아 쌓인 원망을 푸는 ‘아버지와 아들’, 대륙에 두고온 아내를 그리다가 90세가 넘어서야 귀향해 자신의 손으로 아내를 묻고 죽음을 기다리는 101세 노인의 이야기 ‘잎은 떨어져 흙으로 돌아가고’등이었다.

탐친으로 그때까지 800만명이 양측을 오갔으니 지금은 1,000만명을 훨씬 넘었을 것이다. 편지왕래와 전화통화는 말할 것도 없다.

동서독의 경우 분단이 시작된 1949년부터 통일되던 89년까지 매해 평균 200만명 정도가 혈육을 찾아 분단의 선을 넘었다. 핏줄에 대한 그리움은 세계인의 원초적이고 맹목적인 목마름이다. 우리는 이산가족 만나기를 더이상 비원(悲願)이라고 불러서는 안된다. 혈육 찾기는 이데올로기 전쟁에 희생당한 개인의 정당한 요구이며, 기필코 지켜져야 할 희망의 약속이어야 한다.

50년 동안 가족을 그리워해 온 사람에게는 많은 것을 요구할 자격이 있다. 상설면회소 설치로도 만족할 수는 없다. 숫자로 표현한다면 중국·대만이나 동·서독처럼 1년에 100만명 이상의 이산 가족이 남북을 오가야 할 것이다. 그때야 비로소 통일이 다가왔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박래부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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