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풍경을 20세기 풍경과 사뭇 다르게 만들 과학기술의 핵심적 영역은 생명공학과 정보공학일 것이다.인터넷으로 상징되는 정보공학은, 유전자 간섭으로 상징되는 생명공학처럼, 낙원과 지옥이라는 상반된 전망을 인류 앞에 펼쳐 보이고 있다.
인터넷이 자유의 신장에 결정적으로 기여할 것이라고 보는 낙관주의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인터넷은 집단보다는 개인에게 유리하고 거대 제도들보다는 소규모 동호회에 유리하다.
인터넷의 그런 특성은 국가, 정당,기업, 노동조합 같은 전통적 권력 담지자들로부터 권력의 상당부분을 떼어내 이노베이션(혁신)의 벡터인 개인들과 소집단들로 이전시킬 것이다.
이 지점에서 ‘포스트정치’라고 부름직한 사이버 공간의 정치가 등장한다. 포스트정치의 주체는 하이퍼시민(사이버시민), 곧 나라나 계급의 경계를 가볍게 넘나드는, 자유로운 네티즌들이다.
그러나 인터넷이 개인의 자유를 크게 위축시킬 것이라고 보는 비관주의자들도 있다.
이들의 견해에 따르면, 인터넷은 국가와 기업과 전문가들 사이에 새로운 신성동맹을 창출해서 집단적 정치의식을 마비시키면서 최악의 감시 사회를 만들어낼 것이다.
그 사회는 정보공학과 전자상업의 전문 지식으로 무장한 극소수의 새로운 지배계급(하이퍼계급)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낙관적 시 나리오는 새로운 세대에게 인터넷이 빠르게 보급되고 있고, 네티즌 사회의 시민인 그 하이퍼 시민들이 이노베이션에 대해 가장 열려 있는 사람들이며, 또 그들이 가장 개인주의적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개인적 자유를 비롯한 사생활과 지적소유권의 보호가 하이퍼 시민들의 주된 관심사다.
미국의 전자전선재단(EFF)이나 민주주의와 테크놀로지센터(CDT) 같은, 인터넷 항해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비정부기구들의 등장은 국가 권력에 맞서 자신들의 의지를 펼칠 하이퍼시민 공동체의 목소리를 키울 것이다.
이 시나리오의 지지자들은 인터넷이 표현의 자유를 신장할 최강의 무기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최다의 대중에게 정보 접근권을 허락함으로써 엘리트들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전망에 따르면, 국가는 인터넷망과 자율적 공동체를 통제하려고 덧없이 애쓰다가, 결국은 제풀에 자지러지고 말 것이다. 네티즌들이 공동체주의적 ‘직접 민주주의’를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 직접민주주의는 현대 민주주의의 보통선거보다는 아테네식 민주주의에 가깝다.
아테네에서 여성과 노예와 외국인들이 정치 시스템에서 배제되었듯이, 사이버공간에 들어올 기술적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새로운 질서 바깥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네티즌 사회가 아테네보다 더 관용적인 것은 분명하다. 무엇보다도, ‘외국인’이라는 개념이 네티즌 사회에 알려져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피부빛깔이나 출생지에 상관없이 약간의 지식만 있으면 누구나 하이퍼 시민이 될 수 있다.
인쇄술의 발명에서 의무 교육에 이르기까지는 수백년이 걸렸지만, 인류의 대부분이 하이퍼 시민이 되기까지는 앞으로 수십년이면 족할 것이다. 이 시나리오 안에서 궁극적 승리자는 개인이다.
그러나 이것과는 정반대의 시나리오가 있다. 이 시나리오가 그리는 미래는 조지 오웰의 ‘1984년’과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허버트 마르쿠의 ‘일차원적 인간’을 섞어놓은 악마적 세계다.
그 세계의 수동적 대중을 인도하고 감시하는 것은 오웰의 빅브라더 비슷한 새로운 몰로크다. 이 시나리오의 지지자들은 긴밀히 연결된 세 가지 사회적 정치적 경향에 주목한다.
첫째, 인터넷에 내재한 동질화 성향이 대중의 획일화를 부추길 것이다; 둘째, 경제적.문화적 불평등이 커지면서 지배 계급의 성원들 사이에 공공 안전 심리가 크게 상승할 것이다; 셋째, 국가와 거대 기업의 이해 관계를 또렷이 구별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인터넷망이, 널리 선전되는 특징인 그 쌍방향성을 통해서, 사람들을 서로 비슷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동질화 효과는 네티즌의 수와 비율이 불어남에 따라 앞으로 더 커질 것이다.
이런 측면에 주목하는 사람들에게는, 지난 세기 말부터 거론되기 시작한 맥월드(맥도날드 햄버거로 상징되는 미국의 문화에 맞추어 사람들의 기호나 취향이 평준화, 획일화되는 사회)가 미래 정치 문명의 밑그림처럼 보인다.
부자와 빈자 사이의, 그리고 테크놀로지 지식의 소유자와 비소유자 사이의 양극화가 진척됨에 따라 이런 획일화는 더 큰 가속도를 얻을 것이다.
게다가 소수의 ‘가진자’와 다수의 ‘못가진자’로 사회가 양극화하면, ‘가진자’ 사이에 신변의 안전에 대한 관심이 커질 것이다.
우리들이 이미 목격하고 있는, 인터넷 망을 통해 대중이 쏟아내는 불온하고 상스러운 좌절의 언어들도 이들의 불안을 자극할 것이다.
지배 계급이 감시체제의 강화에 유혹을 느낄 사회심리적 토양이 마련되는 것이다. 그와 함께 사회에서 기업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더 커질 것이다.
이미 오늘날에도 세계의 1백대 경제 주체 가운데 반 이상이 국가가 아니라 기업이다. 기업들의 비중이 커지면, 거대 기업들과 선출된 정치인들 사이의 이해관계가 서로 포개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월드와이드웹(www)이나 다른 중요한 망들의 운영자에 의해서 사생활과 교육과 정치가 평준화될 날은 멀지 않았다.
바로 그 때가 세심한 감시자로서의 몰로크가 나타나기 좋은 때다.
이 새로운 몰로크는 공안질서의 수립을 외치는 국가와 다국적 기업과 기술적 하이퍼계급이 과학자 사회의 지지를 받아 자신들의 이해 관계를 결합할 경우에 필연적으로 탄생할 괴물이다.
미국 국가안보위원회(NSA)는 이미 에슐론이라는 시스템을 통해서 매일 세계 도처의 30억여 대화들을 잡아내 분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 몰로크는 세세한 정보들을 손에 쥐고 우리들 머릿속의 생각까지 읽어내려고 할지도 모른다.
이런 두 가지 시나리오를 우리는 각각 ‘사이버에덴’과 ‘사이버감옥’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사이버 세계에서는 단발적 행위가 인간 관계보다 중시되고, 전문가가 정치가보다 중시되며, 지식이 정의보다 중시되고, 가상이 현실보다 중시된다.
이런 조건들을 돌파하며 인터넷이 공공 서비스와 공생(共生)의 거대한 도로망이 될 수 있다면, 그 사회는 사이버에덴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사이버세계는 또 인공두뇌의 형태를 한 몰로크가 인터넷 경찰로서 개인들의 사생활 일체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사이버감옥이 될 수 있다.
쾌적한 공공서비스의 수단으로서의 인터넷과 최악의 감시체계의 실핏줄로서의 인터넷, 그 두 개의 가능한 시나리오의 갈림길에 우리가 서 있다.
편집위원
aromachi@hk.co.kr
■하이퍼계급에 대하여
정보공학 지식 갖춘 미래 최상 유산계급
인터넷과 시장이 번성할 미래 세계의 최상층계급은 흔히 ‘하이퍼계급’이라고 불린다. 하이퍼계급은 자크 아탈리의 조어다.
아탈리에 따르면, 하이퍼계급은 특허, 전문지식, 기량, 이노베이션, 창작 등 문화 관련 수입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기존의 지배계급과는 성질이 다르다. 무엇보다도 이들이 지닌 특권이 생산수단의 소유나 상속에 기초해 있지 않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들은 자유주의적 의미의 기업인도 아니고 마르크스주의적 개념의 자본가도 아니다. 이들에게는 기업도, 토지도 없다.
이들이 부자가 된 것은 아탈리가 ‘유목 자산’이라고 부르는 문화적 자산 덕분이다. 이들에게는 공무를 수행하고자 하는 욕망이 없다.
하이퍼클래스의 성원들은 창조하고 즐기고 움직이는 것을 좋아한다. 이들은 자기 재산이나 권력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데도 관심이 없다. 단지 자식의 교육을 중시할 뿐이다.
그러나 아탈리의 다소 미화된 정의를 넘어서서 하이퍼 계급을 정보화 세계의 새로운 지배계급이라고 널리 정의할 수도 있겠다.
그럴 경우, 이 하이퍼 계급은 전자상업이나 정보공학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갖춘 유산 계급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정보시장은 국가들의 수준에서, 그리고 개인들의 수준에서 불평등을 확대해 중간계급의 분해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인류가 하이퍼계급과 룸펜프롤레타리아로 양분되며, 세계적 수준의 새로운 아파르트헤이드가 출현하는 것이다.
양극화의 조짐은 이 세기 전환기에 벌써 나타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20%는 가장 못 사는 20%에 견주어 소비 수준이 열여섯배에 이른다.
현재의 60억 인류 가운데 30억명은 2달러 미만의 돈으로 하루를 살고 있고, 13억명은 1달러 미만으로 하루를 산다. 미국의 경우는 특히 예시적이다.
1980년부터 지난해까지 최하층의 임금은 점점 줄어든 반면 극소수의 상층부는 전례없는 소득과 재산의 증가를 경험했다.
80년대 초에 미국 기업의 최고 경영자는 종업원들 평균 벌이의 42배를 벌었다. 1998년에는 그것이 무려 419배로 뛰었다.
할리우드와 월스트리트에서 끊임없이 부가 창출되는 그 순간에, 로스앤젤레스와 뉴욕의 뒷골목들에는 빈민들이 한없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거론되기 시작한 ‘디지털 디바이드’(컴퓨터 접근 기회의 불평등) 현상은 하이퍼 계급과 룸펜 프롤레타리아로 양극화될 미래 사회의 문턱이 될 수도 있다.
하이퍼 계급은 디제라티(digerati)와도 겹친다. 디지털(digital)과 지식계급(literati)를 합성한 디제라티는 디지털 혁명과 관련된 사고의 틀을 만들고 자신의 영향력으로 미래를 구체화시키는 정보통신 분야의 거물들을 뜻한다.
이들은 유목민처럼 끊임없이 이동하며 영어나 그 변종 언어를 사용할 것이고, 인터넷망의 장악을 통해서 자기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갖가지 상징 조작을 행할 것이다.
그들은 특정한 국가나 시민에게가 아니라 오직 자기들끼리만 귀속 감정과 동류의식을 느끼는 새로운 귀족 계급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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