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발 떼고 뒤돌아 보고, 또 한발 떼고 뒤돌아 보고... 짧은 만남 끝에 또다시 북녘땅에 혈육을 남기고 돌아서는 남측 상봉단의 발걸음은 천근만근 무거웠다.18일 오전 평양 고려호텔 로비에선 남은 사람이나 떠나는 사람이나 기약하기 어려운 다음 만남을 되뇌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누이 둘을 만나 부모님 제삿날을 알아낸 5대 독자 김장수(68)씨는 북의 누나 학실씨가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시신을 장수네가 있는 남쪽을 바라다 볼 수 있도록 묻어달라고 했다”고 유언을 전하자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으며 “오마니, 이렇게는 못 돌아갑니다”라고 오열했다.
선우춘실(72)씨는 “어릴적 키우다시피한 동생을 홀로 남겨두고 가자니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남측 수행원에게 하소연했다.
평양공항으로 가는 버스에 오르기전 김성옥(72·여)씨는 북의 딸 이순덕(53)씨 동생 김성자(62·여)씨와 부둥켜안고 계속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아픈 몸을 이끌고 오빠와 동생을 만나러 왔다가 사촌동생만 만난 김금자(68)씨는 “오빠와 동생을 만나지 못해 착잡하다. 발걸음이 떨어지지가 않는다”며 안타까워 했다.
김사용(73)씨는 아내 이옥녀(72)씨와 딸 김현실(51)씨를 양팔로 부둥켜 안고 “통일되는 날까지 몸건강히 잘 있으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동선(73)씨는 건강을 당부하는 동생들에게 “농사짓는 것이 큰 운동”이라며 “식전에 2홉들이 소주를 비우는 등 나는 건강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켰다.
남편 최경길(78)씨를 만났던 북의 아내 송옥순(75)씨는 아무 말도 못하고 하염없이 흐느끼기만 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송씨는 50년간 수절하며 아들을 키웠다.
고옥림(74·여)씨는 북의 가족들이 선물한 종이로 꼭꼭 싼 김일성 뱃지를 카메라 기자들이 찍자 “가져가도 되느냐”고 묻기도 했다. 일부 가족들은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마지막 순간을 사진에 담아 나눠 가졌으며 버스 차창에 서로 손을 붙인 채 “꼭 다시 만나자”고 소리쳤다.
/평양=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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