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지도 않았구나.”미안함의 다른 표현이었을까. 부모의 월북으로 모진 세월을 견뎠을 자식들에게 14년만에 찾아온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북측 방문단장인 류미영(79) 천도교 청우당 중앙위원장이 16일 오후 마침내 숙소인 쉐라톤 워커힐 호텔에서 서울의 둘째아들 최인국(53)씨와 막내딸 순애(48)씨 등 자녀들을 만났다.
류 단장은 1986년 9월 외무장관을 지낸 남편 최덕신씨와 미국에서 함께 월북했다. 그러나 이후 정보기관의 감시를 받으며 ‘월북자의 자식’이란 멍에를 지고 살아온 남매의 눈길에서 원망의 감정은 찾을 수 없었다.
“세상이 좋아지니까 이렇게 엄마를 만나게 되네요”(순애씨) “….”(류 단장) 조심스레 이어지던 모녀의 대화는 순간 류 단장의 오열로 여느 이산가족의 상봉과 다를 바 없는 울음바다로 변했다.
“엄마, 엄마.” 순애씨는 그 이름을 14년만에 부르며 흐느꼈고 류 단장은 “순애야, 울지마라”며 피눈물을 쏟아냈다. “아버지는 어떻게 돌아가셨어요?” “북에서 잘 대해줘서 편히 사시다 돌아가셨다(89년 6월 사망).” 순애씨는 “막내딸인 저를 각별히 사랑해주셨는데 얼굴도 못뵙고 아버지를 보냈어요”라며 몸부림쳤다.
순애씨는 “이런 좋은 날 옛날 얘기 해서 뭐해요. 세월이 많이 지났고 우린 엄마와 딸이잖아요”라며 에둘러 류 단장을 용서했고, 만감이 교차한 탓인지 지난 10일부터 아예 잠적했던 인국씨도 류 단장과 무언의 화해를 했다.
인국씨는 “꿈에서라도 뵙고싶었습니다”라며 어머니을 가슴 가득 껴안고 참아왔던 눈물을 쏟았다.
김태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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