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이 3권의 책을 연이어 읽거나 동시에 읽는다면 상당한 혼란을 감수해야 할 것 같다.‘누가 일본을 왜곡하는가’는 반일(反日) 교육의 세례를 받고 자란 독자들에게는 심한 거부감을 일으킬 만한 내용이고, ‘일본의 전후책임을 묻는다’는 일본 학자가 일본의 네오내셔널리즘(신민족주의)을 정면으로 비판한 책이다.
도식적으로만 보면, 한국인 저자는 반일주의에 반박하고 일본인 저자는 일본의 전쟁발발 책임을 묻고 있다.
여기에 영국인 부부가 태평양전쟁 동안 자행된 일본 천황가의 약탈사례를 밝힌 ‘일본인도 모르는 천황의 얼굴’까지 가세하면 혼란은 극에 달한다.
어쨌든 거의 동시에 출간된 이 3권의 책은, 기존의 역사 교과서나 전여옥의 ‘일본은 없다’처럼 술술 읽히는 책은 절대 아니다.
일본에 대한 감정적 오해와 편견, 일본이 저지른 범죄행위에 대한 어설픈 관용과 망각을 다시 뼈아프게 되살리는 책들이다.
●누가 일본을 왜곡하는가(사회평론 발행)
일본 게이오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와세다대 대학원에서 일본근대문학을 전공한 저자(세종대 일문과 교수)는 책에 자신이 ‘친일파’로 불리기를 원한다고 썼다.
그 만큼 저자는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일본을 바라보는 우리의 ‘오만과 편견’을 적나라하게 비판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쇠말뚝’ 이야기. 일제가 우리 명산 정수리에 깊숙이 박아 민족정기를 고의로 해쳤다는 그 쇠말뚝이다.
저자는 그러나 지금까지 쇠말뚝 논의에서 누가 그리고 왜 쇠말뚝을 박았는지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고 반박한다.
오로지 풍수사상에 어렴풋이 근거한 단정과, 식민지 지배에 따른 자학과 패배감으로 쇠말뚝은 ‘하루라도 빨리 그리고 모조리 뽑아내야 할’ 일제 침략의 상징으로 둔갑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실증적 근거가 없는 지름 2㎝짜리 쇠말뚝보다는, 산등성이 자체가 파헤쳐져 끊임없이 아파트로 변하는 상황부터 걱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밖에도 김진명의 소설 ‘무궁화 꽃이 피웠습니다’는 한마디로 ‘무의식적 폭력긍정론’이며, 한국인은 일본에게 ‘과거 사죄’를 요구하는 동시에 자신들이 저지른 베트남전 만행에 대해서도 한번쯤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오만과 편견’에서 벗어나는 일만이 타자(他者)를 지혜롭게 바라볼 수 있는 길이라는 주장과 함께.
●일본의 전후책임을 묻는다(역사비평사 발행)
도쿄대 대학원 종합문화연구과 교수인 저자는 1990년대 후반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의 책임을 부정하는 역사수정주의(자유주의 역사관)를 정면에서 비판한다.
난징(南京)대학살과 종군위안부 문제를 국내외 반일세력에 의한 날조라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일본이 주변 아시아 민중들로부터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일본 정부와 민중이 과거에 대한 책임을 명확히 떠맡아야 한다”고 경고한다.
저자는 또한 지난 해 일본 국회에서 잇달아 통과된 ‘미일방위협력에 관한 신가이드라인’관련법, 국기(히노마루)·국가(기미가요)법, 통신방수법 등 일련의 신민족주의적 경향에 대해서도 비판의 칼을 내려놓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러한 신국가주의가 아니라, 난징대학살와 종군위안부 문제를 비롯해 생체실험을 위한 731부대, 심지어 청일전쟁·러일전쟁 이후 대만과 조선을 식민지로 지배한 것에 대해서도 ‘회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보다 엄정한 태도로 끈질기게 일본의 전후 책임을 묻는 저자를 보면서 ‘누가 일본을 왜곡하는가’의 박유하교수를 떠올리는 것은 왜일까?
●일본인도 모르는 천황의 얼굴(신영미디어 발행)
아시아 각국에서 자유기고가로 활약 중인 스털링·페기 시그레이브 부부는 책(원제 ‘야마토 왕조(Yamato Dynasty)’)에서 히로히토 천황의 동생 치치부 왕자(1902~1955)의 약탈사를 파헤쳤다.
이들의 의문점은 2차 세계대전 동안 일본이 약탈한 수많은 전리품이 과연 어디로 사라졌는가 하는 것.
이들은 1,000억 달러에 달하는 황금과 보석들이 필리핀 내 200개 이상의 지역에 숨겨져 있으며 그 지휘자는 치치부 황자였다고 주장한다.
약탈작전의 암호명은 ‘황금백합’이었으며, 이 전리품으로 인해 전후 일본이 급성장할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책에는 이밖에도 1세기부터 시작돼 온 야마토(大和) 왕조의 역사, 패전 후 천황가 배후에 자리잡은 기독교도들의 음모 등을 다분히 미스터리 소설같은 분위기로 다루고 있다.
일본이 어떻게 천황을 등에 업고 침략전쟁을 벌였는지에 대한 색다른 보고서인 셈이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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