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이 왜 그토록 남 몰래 눈물로 밤을 지새웠는지 이제야 몸소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15일 이산가족이 50년만의 상봉을 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홀. 남측 이산가족상봉단 가족중 가장 나이 어린 화가지망생 이아름(24·홍익대 회화과 2학년)씨는 태어나 처음 보는 큰 아버지 이동섭(65)씨를 부둥켜 안고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
북에서 온 이씨도 “내게 대학생 조카가 있었다니. 너를 못 보고 죽을 뻔 했구나”라며 한동안 말문을 잇지 못했다.
이씨가 북에 큰 아버지가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챈 것은 초등학교 시절. 할머니 장순복(87)씨는 ‘북한’ ‘동섭이’라는 말만 나오면 허공을 쳐다보며 한숨만 내쉬곤 했다.
이씨는 이번 이산가족 상봉과정에서 큰아버지의 ‘진실’을 확인했다. 당숙 이제수(46)씨가 이산가족 상봉자 신청을 하던 중 큰아버지의 생존사실이 밝혀졌고, 그제서야 아버지 이무웅씨(56)씨는 50년간 가슴속에 꽁꽁 묻어뒀던 가족사를 털어놓았다.
“너의 할아버지는 좌익운동을 하다 총살됐고 큰아버지도 그때 월북하셨지.”
거창한 얘기로만 들리던 분단과 이념의 사슬이 자신의 문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이씨는 며칠간을 끙끙 앓았다. 북에서 오는 얼굴도 모르는 큰아버지와, 상봉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놓고 밤을 지새며 고민하기도 했다.
이씨는 고민을 털어내고 도화지와 사진기를 준비했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큰 아버지를 만나는 현장에 가고 싶다고 졸랐다.
“분단의 상징인 우리가정의 변화를 화폭에 담고 싶습니다.” 한정된 다섯자리지만 가족들은 흔쾌히 이씨에게 한자리를 내줬다.
이씨는 눈물과 울부짖음이 뒤범벅이 된 상봉현장에서 자신의 가족과 다른 가족들을 필름에 담았다. 사진을 토대로 상봉의 역사적인 순간을 고스란히 화폭에 옮길 계획이다.
“현대사가 강요한 ‘가정부재’가 복원되는 감격의 순간을 예술로 승화시켜내는 것이 저의 과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아가 이씨는‘가정’이라는 화두를 예술인생의 평생 테마로 삼을 생각이다.
“가족들이 품어 온 50년의 한을 이제는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분단과 이산의 고통과 한은 우리가족으로 끝을 내야 합니다.” ‘N세대’이아름씨는 몇시간 사이 훌쩍 커 있었다. 김용식기자 jawhol@hk.co.kr
15일 얼굴도 모르는 큰 아버지를 만난 이아름씨. 이씨는 “이산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원유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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