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평양이 또 한번 눈물바다가 됐다. 남북의 이산가족들이 만나 서로 부둥켜안고 울부짖는 모습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함께 눈물 흘렸다.어떤 이들은 그것을 ‘감동적인 드라마’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잔혹한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이산가족 상봉을 지켜보는 세계인들 앞에 부끄러워 얼굴을 들수없는 반인륜적인 드라마다.
치매에 걸린 남한의 어머니는 북에서 내려온 아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한평생 아들 생각에 눈물로 베개를 적셨을 어머니…. 이 뒤늦은 상봉으로 그 어머니의 한이 풀렸을까. 기동조차 못하는 앙상한 몸으로 구급차에 실려 상봉장소로 달려온 노부모들의 모습은 온겨레의 가슴을 때렸다.
왜 좀더 일찍 가족상봉을 이루지 못했는가. 55년동안 혈육의 만남을 막는 반인륜적인 처사를 왜 했는가. 지금 온세계가 남북 모두에게 묻고 있다.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남북관계는 어지러울 정도로 속력을 내고 있다. 남북직항로 개설, 경의선 복원, 개성을 통한 새 육로 개설, 백두산·한라산 교차 관광, 이산가족들의 고향방문과 가족결합 추진 등 굵직굵직한 발표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55년간 막혔던 봇물이 일시에 터지고 있다.
이런 흥분속에서 우리는 이산가족 문제가 옆으로 밀려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역사가 이산가족들에게 진 빚, 그들에게 준 상처를 잊지 말아야 한다. 어떤 교류보다도 이산가족 문제가 중요하다는 인식을 꼭 잡고 있어야 한다.
남한의 경우 7만여명의 이산가족이 상봉을 신청했으나, 이번에 겨우 100명이 북에 갈수 있었다. 가족상봉의 숫자와 기회를 대폭 늘려가야 한다. 그리고 우선 노인들만이라도 남북 어디에서든 가족과 결합할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생이별 반세기만에 자녀를 만난 80대, 90대의 노부모들이 다시 자녀와 헤어져야 하는 비극을 어떻게 견디겠는가.
언론사 사장단의 일원으로 북한을 방문하는 동안 나는 아버지의 북송을 기다리는 비전향장기수의 딸을 만났다. 단군왕능에서 안내원으로 일하는 그는 머지않아 아버지를 만날 기쁨으로 들떠 있었다. 기뻐하는 그를 보면서 나는 국군포로, 휴전이후 이런저런 사건으로 납북된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들은 이곳에서 가정을 이루어 모두 잘 살고 있다. 그들을 남한으로 돌려보내면 이곳의 가정이 깨지고 새로운 이산가족이 생기게 된다. 그들과 비전향장기수들을 맞바꾸자는 남한의 요청을 받아들이기는 어렵다”고 우리와 동행한 북한 사람들은 같은 주장을 되풀이했다. “KAL기 여승무원 2명도 좋은 남자들과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 그들 가족과 가깝게 지내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소식이라도 전해줘야 할것 아니냐. 생사조차 몰라 애태우는 남한의 가족들을 언제까지 외면하겠느냐”고 내가 말하자 그들은 묵묵부답이었다.
앞으로의 가족상봉은 이 모든 이산가족들을 끌어안아야 한다. 험난했던 우리민족의 역사속에서 깊이 상처받은 이산가족 한사람 한사람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려는 배려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남북당국자 모두가 역사앞에서 져야 할 의무다.
지난 85년 분단후 처음 이루어졌던 이산가족 상봉은 단 1회로 끝났다. 그후 15년동안 가족상봉의 꿈을 접지못한 채 애태우던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났다. 이처럼 잔인한 일이 더이상 한반도에서 일어나서는 안된다.
가족상봉을 막거나 늦추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용서받을수 없는 죄악이다. 오늘 우리앞에 펼쳐지는 가족상봉은 잔혹한 드라마다. 뼈만 앙상한 채 들것에 누운 어머니, 꿈에 그리던 아들을 못알아보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 55년간 그들의 상봉을 막았던 잔혹한 남북의 역사를 새기며 남북의 새시대를 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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