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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상봉/남북이산 교환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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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상봉/남북이산 교환방문

입력
2000.08.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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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마도 떨친 '혈육의 정'“순환이가 온다는데 이까짓 병이 문제야.”

불치의 병마도 모정만은 막을 수 없었다. 말기 위암으로 투병중인 이덕만(李德萬·86) 할머니는 14일 북에서 오는 아들 안순환(安舜煥·65)씨를 만나기 위해 병상에서 일어나 남측 가족 숙소인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파크텔에 입소했다. 주변에서 “그 몸으로는 무리”라며 만류했지만 차마 애틋한 모정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13일 퇴원한 이 할머니는 “앰뷸런스를 타고서라도 가야 한다”며 “19일이 순환이 생일인데 미역국을 끓여가야 한다”고 부엌으로 나서는 통에 가족들이 설득하느라 혼쭐이 났다. 이 할머니는 휠체어를 타고 호텔에 들어서면서 “순환이를 보러왔다. 너무 기쁘다. 빨리 보고 싶다”며 육신의 고통조차 잊은 듯 했다.

허리를 다쳐 거동도 힘든 민병옥(97) 할머니도 아들 박상원(65)씨를 만나기 위해 앰뷸런스를 타고 먼 길을 달려왔다. 민 할머니는 “아들 한 번 보려고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그냥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며 “3일동안 평생 못 다한 얘기를 다 나누고 갈 것”이라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15일 북쪽 오빠를 만나러 떠가는 김금자(69)씨는 ‘휠체어 방북’을 강행키로 했다. 허리를 심하게 다쳐 “보호자 없이 가는 것은 무리”라는 판정을 받고 14일 청와대 오찬에도 가지 못했지만 방북의지는 꺾지 않았다. “평생 이 날만을 기다렸어요. 휠체어와 진통제에 의지해서라도 오빠를 만나 한없이 울고 싶어요.”

아버지를 그리는 마음은 교통사고의 후유증마저 이겨냈다.

지난 4월 교통사고로 팔다리를 심하게 다친 최중선(52)씨는 아버지 필순(77)씨를 만나기 위해 병상에서 일어나 가족들의 부축을 받으며 호텔에 입소했다.

100세로 남측 가족 최고령자인 조원호 할머니도 치매와 고령으로 거동이 힘들지만 아들 상봉을 위해 앰뷸런스에 실려 호텔로 왔다. 조옥린(72)씨는 고관절염 수술까지 미루고 오빠 용관(78)씨를 만나러 휠체어로 상경했고, 북쪽 문병칠(68)씨의 숙모 최돈숙(86)씨도 “다리를 다쳐 움직일 수는 없지만 조카 얼굴을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며 휠체어를 타고 포항에서 올라왔다.

이날 올림픽파크텔에 앰뷸런스나 휠체어에 실려온 이산가족은 10여명에 달해 주위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이국 땅에서도 부모형제를 만나려는 발길이 이어졌다. 미국 뉴욕에 사는 박성규(朴聖圭·70)씨는 50년 전 헤어진 셋째형 명규(明圭·73)씨가 자신을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16년만에 처음으로 태평양을 건넜다. 박씨는 “죽은 줄만 알았던 형이 살아온다는 소식에 정신없이 짐을 꾸렸다”고 기뻐했다.

북한 방직기술의 대가로 공훈과학자인 조용관(78)씨의 아들 경제(52)씨와 딸 경희(50)씨도 14일 이민갔던 호주에서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귀국했다.

/배성규기자 vega@hk.co.kr 김영화기자 yaaho@hk.co.kr 박진석기자 jseok@hk.co.kr

■'비정의 월북' 北단장 류미영

‘그녀의 감회는 어떨까….’

자녀 5명(2남3녀)을 뒤로 한 채 북으로 넘어간 지 14년만에 8·15이산가족 북측방문단장으로 고향땅을 다시 밟는 류미영(柳美英·79·여) 북한 천도교 청우당 중앙위원장. ‘비정의 월북여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어다녔던 그의 귀향은 8·15상봉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임에 틀림없다.

류 단장은 지난해 8월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남북천도교 최고지도자 회담’에서 남측인사들이 “자식들을 보고 싶지 않느냐”라고 묻자 “이봐! 왜 보고 싶지 않겠어. 인국(둘째 아들)이는 어떤지…”라며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지고 있다. 눈물은 마르지 않은 셈이다.

그러나 둘째 아들 최인국(崔仁國·53)씨 등 자녀들은 “지금은 어머니를 뵙고 싶지 않다”며 감정의 앙금을 삭이지 못하고 있어 류 단장이 자녀들을 상봉할 수있을 지도 관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1921년 서울에서 태어난 류단장은 5·16쿠데타 주도인물중 하나로 외무부장관, 통일원고문을 거쳐 60~70년대 2번이나 천도교 교령을 지낸 최덕신(崔德新·89년 사망)씨의 부인. 류단장은 ‘주체사상을 좇아’ 86년4월 남편 최씨와 함께 북으로 갔다.

이후 남편 최씨가 북한에서 조선종교인협의회 회장 등을 지내다 사망하자 활동에 나서 천도교 중앙지도위원회 고문, 범민련 북측본부 중앙위원,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 등 굵직한 직책을 지냈다. 6월 남북정상회담때는 북한 여성계 대표로 이희호(李姬鎬)여사와 함께 남북여성분야 협력간담회에 참석하는 등 북한 권력서열 20위에 드는 실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임시정부시절 광복군 총사령관을 지낸 류 단장의 아버지 류동열(1880∼1950)장군과 김일성(金日成)주석의 스승으로 칭송받고 있는 시아버지 최동오(崔東旿·1895∼1963)씨도 ‘반공·반북’의 길을 걷다 삼팔선을 넘는 등 류단장의 가족사는 월북으로 점철돼 있다.

천도교중앙본부의 한 관계자는 “북한에서는 화려하게 활동했다지만 월북전에는 평범한 종교계 간부 부인이자 자상한 어머니였다”며 “자식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 그가 어떤 모습일 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류 단장에게도 상봉의 한 가닥 희망은 남아있다. 막내 딸 순애(48)씨가 자녀중 유일하게 최근 통일부에 상봉에 관해 문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황양준기자 naige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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