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이 14일 이산가족 방북단을 청와대로 초청, 오찬을 함께 한 자리는 그리움과 기대감, 감사와 한(恨)이 섞여 있었다.김대통령은 방북단 전원과 일일이 악수하고 많은 이산가족들은 “가족을 만나게 해 줘 고맙다”고 인사했다. 특히 오찬후 방북단 중 4명의 대표가 소감을 절절하게 말할 때 장내에는 공감의 눈물이 가득했다. 대표들은 상봉의 무한한 기쁨을 말하면서도 이번에 못가는 이산가족들에 대한 미안함도 전했다.
평북 선천이 고향인 박영일(76)씨는 “반세기만에 가족 소식을 알게 돼 정말 기쁘다”면서 “그렇지만 못가는 가족에게는 죄송하다”고 말했다. 박씨는 “대통령 노고에 감사하며 앞으로도 상봉이 지속되고 서신왕래, 면회소 설치 등이 이루어져 많은 이들이 희망과 기대를 갖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황해도 연백출신인 이재경(79)씨는 “사랑하는 가족을 버리고 떠난 지 50년이다”면서 “그동안 아들 딸의 생사가 어찌됐는지, 어디서 사는지 한시도 걱정하지 않은 적이 없다”고 소회를 털어놓았다.
이씨는 “그동안 하얗게 늙었다”면서 “빨리 가서 가족을 부둥켜안고 싶다”고 말했다. 이씨는 그러나 “가고 싶어도 못가는 가족들이 많아 친구들에게 북한에 간다는 말도 못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또 “베를린 장벽도 무너졌는데 우리도 마음의 장벽만 허물면 다 만날 수 있을 것”이라며 “우리가 마음을 터놓고 오갈 수 있도록, 못가는 사람들의 한을 풀어주도록 노력해 주시라”고 요청했다.
평북 영변이 고향인 김찬하(76)씨는 “가족을 만나게 돼 기쁘지만 문제점을 하나 말하겠다”면서 “현재 이산 1세대인 아버지들은 경제권이 없어 아들이 부담된다고 하면 주저앉게 되는데 배려해달라”고 말했다.
김씨는 “(처음 뽑은 후보) 400명 중 160명이 기권했다”면서 “1세대와 생각이 다른 2세대를 납득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해도 은율 출신인 최학순(71)할머니는 “죽은 줄만 알았던 여동생을 만나게 돼 너무 기쁘다”면서 눈물을 흘리자 주변 사람들도 눈시울을 적셨다. 최씨는 “같이 살면 좋겠고 평화통일이 되서 자유롭게 오고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표들의 소감이 있고 나서 김대통령은 “나는 북한출신이 아닌데도 나이 70을 넘자 북한을 못가고 끝나는 것 아니냐는 슬픈 생각이 들었었다”면서 “내가 이 정도니 북이 고향인 여러분은 오죽 했겠느냐”고 위로했다.
김대통령은 “이산가족 7만명 중 100명만이 간다”면서 “그러나 시작이 반인만큼 이산가족들이 가족과 어디서든 살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김대통령은 “한 분, 한 분 만나서 따뜻한 정을 전하고 돌아오기를 바란다”면서 “여러분이 좋은 분위기를 조성해 북한이 남한을 더 많이 이해하는 분위기를 조성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김대통령은 “그동안 반공 일변도, 적대 일변도에서 갑자기 달라진 상황에 당황할 것”이라며 “하지만 남한 국민을 대표해서 가는 것인만큼 북한 동포들에게 ‘한반도가 세계 중심이 되도록 손잡고 나가자’고 해달라”고 말했다.
이영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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