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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열전/ (7)할말은 하는 '곧은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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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열전/ (7)할말은 하는 '곧은 목소리'

입력
2000.08.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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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하나 덤으로 얻은 것 같습니다.”밤 12시 ‘MBC 마감 뉴스’를 3개월 전부터 진행하는 황헌(41) 앵커의 출근 시간은 오후 6~8시, 퇴근은 새벽 1시. 아침 8시 반쯤 일어나면 남들이 직장에 나가 있을 낮시간은 온전히 그의 몫이다.

그 시간의 상당 부분은 그동안 소홀했던 가족들에게 쏟는다고 한다.

방학중인 아이들과 영화를 보러 가기도 하고, 학원갈 때 차로 데려다 주기도 한다.

또 이전에 사놓기만 하고 못 읽은 책들을 보며 풍부한 감성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한다.

“얼마 전 읽은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에서 주인공의 수형생활과 제 기자생활이 상당히 비슷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지난 16년은 그야말로 숨돌릴 새도 없었다. 그는 사회부를 시작으로 정치·경제·국제·문화부 등 거의 모든 부서를 거쳤고, 국제부에 근무하던 89~91년에는 걸프전, 소련 붕괴, 독일 통일 등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는 바람에 거듭 현장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모스크바 반동 쿠데타가 발생했을 때는 탱크 위로 올라간 옐친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97년 대선 때는 위험부담을 고려한 경영진의 유보적인 태도에 맞서 ‘김대중 후보의 1% 우위’라는 여론조사 결과 발표를 이끌어냈고, ‘시사매거진 2580’의 초기 멤버때는 애정이 담긴 날카로운 시각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프로그램의 색깔을 정립했다.

이런 현장 경험은 마감뉴스 진행에 좋은 밑거름이 되고 있다. 단순히 뉴스를 정리, 전달하는 영국식 프리젠터(presenter)에 가까운 다른 뉴스 앵커들과는 달리 마감뉴스는 앵커의 재량권이 비교적 크다.

편집회의에서 아이템 선정과 흐름, 조율 등에 그의 의견이 대부분 반영되며, 리포트를 제외한 모든 멘트를 직접 작성한다.

9시 ‘뉴스데스크’ 이후에 일어나는 긴급상황을 처리하는 것도 온전히 그의 몫이다. 취재기자까지 결정하는 미국식 앵커 개념의 저널리즘을 발휘할 수 있다.

“요즘 여론주도층이나 직장인들은 대개 이런저런 약속으로 귀가시간이 늦지요. 마감뉴스의 중요성은 앞으로 더욱 높아질 겁니다.”

그는 나름대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시청자의 정서를 섬세하게 읽어 주기 위해 압축적이고 직설적인 클로징 멘트를 날린다.

“정치가 삼류인데 사회가 일류일 수 있겠느냐.”(국회 날치기 사태) “현대가 오늘도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았습니다.”(현대사태) “체면과 허식을 버리고 허심탄회하게 ‘돈’이라는 문제의 본질로 다가서자.”(의약분업)

그 덕에 오전시간 대부분은 격려 또는 항의성 e_메일에 답장하는 데 보낸다.

“속 시원하다” “할말을 해 줘서 고맙다”는 반응도 있지만 “앵커가 뭔데 그런 말을 하느냐”는 이해당사자의 격렬한 비난도 많다.

이런 반응을 접할 때면 ‘앵커’라는 직업에 대한 피상적인 인식을 엿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같은 이유로 그는 사람들이 앵커의 외모에 관심이 많은 것도 떨떠름하다. “혐오감을 주지 않을 정도로만 생기면 되죠. 주변적인 요소 아닙니까?”

동국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영국 카디프대에서 저널리즘 석사학위를 받았다. 84년 MBC에 입사했다. 180㎝가 넘는 큰 키에 말쑥하고 신뢰감을 주는 인상이다.

남들이 하루를 마감할 저녁 7시. 그는 서서히 일터로 들어설 준비를 한다. “내일자 신문도 보고, 9시 뉴스도 모니터해야죠.”심야뉴스 사령탑의 하루는 이때부터 시작이다.

양은경기자 ke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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