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 이북…. 노창이 언제 오니?”박원길(朴元吉·89·서울 은평구 신사1동)씨는 혈육에 대한 애끓는 그리움을 마지막으로 토해내고는 13일 새벽 눈을 감았다. 반세기동안 그려오던 북의 막내동생 노창(69)씨와의 상봉을 단 이틀 앞두고서였다.
1950년 7월 충남 논산시 강경읍의 한 방공호에 함께 숨어있다 ‘답답해 친구 좀 만나고 오겠다’며 나간 뒤 소식이 끊겨버린 막내동생. 그 동생의 서울방문 소식에 병상의 박씨는 “죽기 전에 녀석을 보긴 보는구나”라며 내내 아이처럼 들떴다.
“아버님 생전에 소원을 풀어드리게 됐다”며 더할 나위없이 기뻐했던 가족들은 이날 빈소에서 “50년을 기다려오셨는데, 단 이틀을 못 참으시고 훌쩍 떠나시느냐”라며 오열했다.
“막둥이를 한번이라도 보면 소원이 없겠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해온 박씨는 2월 임파선암 진단을 받았다. 고령때문에 수술과 항암치료는 엄두도 못낸 채 해열제와 진통제로 생명을 이어가던 중 뜻밖에 지난달 북측 이산가족 방문단 명단 200명에 막내가 포함됐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
박씨는 기쁨 속에서도 나날이 악화해가는 병세에 초조해하며 “한달만 일찍 내려와도 걸어가서 볼 수 있을텐데” “왜 이제야 내려오는거야”라며 자주 탄식했다. 결국 7일부터 혼수상태에 들어간 박씨는 잠시 눈을 떠 막내 동생의 이름을 불러보고는 이날 한많은 삶을 끝내 마감했다. 6남매의 맏형인 박씨는 노창씨가 남에 와서 만날 수 있었던 단 하나 남은 형제였다.
박씨의 아들 문규(文圭·63)씨는 “삼촌이 서울을 밟는 15일이 아버님 장례일입니다. 삼촌을 잠깐만이라도 아버님 앞에 모실 수는 없겠습니까?”라며 안타까운 눈물을 쏟았다.
김태훈기자 onewa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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