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이 반세기 동안 그토록 그리워하시던 어머니를 이제야 이 아들이 만나게 됐습니다. 50년 한을 풀게 돼 하늘에서라도 기뻐하실 겁니다.”‘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94년 84세로 별세) 박사의 아들 장가용(64) 서울대 의대 교수가 북측 노모를 만나게 됐다. 8·15이산가족방문단에서 의료지원 특별수행원을 맡은 장교수는 15일 방문단과 동행, 6·25 때 헤어진 노모 김봉숙(89)씨를 평양에서 만나게 될 것으로 밝혀졌다.
장교수는 한국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아버지와 함께 가슴 저미도록 그리워하고 만나고 싶어했던 분”이라며 감격에 젖었다.
장기려 박사는 평생을 어렵고 가난한 이웃을 위해 인술과 복음을 펼쳐 ‘가난한 이들의 아버지’로 널리 알려진 명의.
1951년 부산 영도에서 천막병원인 복음병원을 세워 전쟁통에 버려진 고아와 헐벗은 이웃들을 위해 무료진료를 시작했고 68년에는 국내 최초의 의료보험조합인 ‘부산청십자의보조합’을 설립, 의료구호사업에 평생을 바쳤다.
북에 두고 온 아내에 대한 그의 ‘망부가’는 유달리 애절했다. 아내를 그리워하며 평생 수절했고 94년 12월25일 지병으로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아내를 찾을 정도였다. 장교수는 “아버지의 생전 소원은 어머니를 한 번이라도 만나보는 것이었다”며 “손주들에게도 항상 어머니 얘기를 하시곤 했다”고 회상했다.
장교수는 “북한에 가기 전 아버님 묘소를 찾아 ‘내일 모레면 어머니를 만나뵙게 된다’고 말씀드릴 생각”이라며 “어머니가 어떤 모습일지, 무슨 선물을 해야 할지… 만감이 교차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의 대를 이어 서울대에서 의학을 전공한 해부학계의 대부. 장교수는 “나보다 더 아픈 사연을 지닌 많은 이산가족께 미안하고 죄스럽다.
의료수행원으로 묵묵히 맡은 역할만을 다하겠다”며 보도를 극구 사양하면서도 “50년간 헤어져 살아온 이산가족이라면 모두 똑같은 심정일 것”이라고 설렘과 기대를 감추지 못했다. 장교수의 가족들도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그토록 보고 싶어하던 할머니를 살아 생전 뵙게 되다니 믿기지 않는다”고 기뻐했다.
배성규기자
veg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