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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의 '라이브 여왕'이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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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의 '라이브 여왕'이은미

입력
2000.08.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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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있어 음악은 독약이다그는 외로움에 못이겨 독약을 마신다

짙은 어둠과 한줌의 슬픔과 눈물까지

아프게 타서 아무도 모르게 혼자 마신다

그는 외로움으로 노래하지만 우리는 그리움으로 그를 본다

-한 팬이 적어 보낸 ‘이은미論’-

“처음 받고 얼마나 눈물을 쏟았는지 몰라요.”이 세상에 어떤 글도 이만큼 자신을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했다는 이은미, 그녀는 이 글을 마치 부적처럼 품고 다닌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함부로 팔지 않기 위해.

맨발, 그리고 자유

7월 22일 정동 이벤트홀. 이은미(36)는 공연중 갑자기 발을 절뚝했다.

“여러분 제가 발에 뭐가 찔렸나봐요” 마치 곡목 소개라도 하듯 담담하게 이렇게 던지고는, 그녀는 또다시 무대 위를 맨발로 미친 듯 뛰어 다녔다.

기가 질리게 하는 카리스마도 여전했다. 공연 후 절뚝거리며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고 관객들은 비로소 그녀가 발을 다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치 무당의 내림굿처럼 이은미는 신발을 벗음으로써 귀기(鬼氣)를 얻었다.

1993년 7월 2집을 낼 당시, 아직 신인가수이기에 하루 2회씩 11일 연속 공연하는 무리한 조건으로 겨우 극장을 빌릴 수 있었다.

닷새 후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몸이 굳어 버렸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나오더라구요”드레시한 옷에 야한 화장, 주저리주저리 달린 장신구. 공연에 대한 허욕이 몸에 치렁치렁 묻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바지에 티셔츠, 맨얼굴로 돌아오니 한결 홀가분해졌다. 그리고 남은 마지막 족쇄, 하이힐을 벗어 던지고 비로소 자유로워졌다.

그 덕일까, 이제는 15일 연속공연도 밥먹듯 하고 있다. 하지만 맨발의 길은 험난하다. “핀침 박히는 건 부지기수예요.” 객석서 던진 야광막대에 조명이 깨져서 그 유리파편이 박히기도 했다.

이은미와 라이브

가수생활 9년간 총400여회의 라이브 공연. 단독공연만 한해 평균 60~65회니 일주일에 한번 이상을 무대에 서는 셈이다.

게다가 여러가지 찬조출연까지 합치면 무대에 서는 날은 줄잡아 300일 이상. ‘라이브의 여왕’이라는 호칭은 거저 얻어진 게 아니다.

“음악하는 사람은 무대 위에서 검증받아야죠. 무대는 신성하니까요” 그런 만큼 공연에 쏟는 그녀의 열정은 아무도 못말린다.

“많이 싸웠지요. 지금 멤버 갖추는 데 4년 반이 걸렸습니다.”어지간한 공연장은 반사판의 설치 여부와 상태, 무대 깊이 등 특성을 훤히 읽고 있어 그에 맞춰 조명과 장치를 설계한다.

“이래저래 못한다고 핑계대는 사람이랑은 일 못해요.” 공연 때마다 스태프를 계속 갈아치워 현재의 멤버가 만들어졌다.

일단 무대만 완성되면 그 후는 온전히 이은미의 몫이다. “뭐든 내맘대로죠. 나오는 대로 이야기하고 노래하고…”때로 악마적인 모습도 보인다. “무대위에서 관객을 비웃으며 조롱하기도 해요. 그러다가 한없이 천진무구한 천사가 되기도 하고….”

처음 200석에서 현재의 1,200석까지. 라이브의 역사만큼 좌석수와 관객 호응도 늘어 갔지만 가장 잊지못할 공연은 13명 관객과의 울산공연. 300석 규모 소극장에 달랑 13명만이 띄엄띄엄 앉아 있었다.

처음에는 맥없이 몇 곡 부르던 그녀는 모두에게 소풍갔을 때처럼 둘러앉자고 제안했다. 노래 부르면서 얘기도 하고 음료수도 나눠 마시고, 나중에 헤어질 때 연락처도 서로 적어 주었다.

이은미, 그녀는

올초 리메이크앨범 ‘노스탤지어’발매 이후 전국 순회공연을 마치고 현재 쉬면서 강의와 5집 앨범 준비를 하고 있다.

재즈피아니스트 김광민의 간청으로 작년 말부터 동덕여대 실용음악과 강사로 보컬을 강의하는 그녀.

“라이브로 네 곡을 했더니 목이 아프더라”고 자랑스럽게 지껄이는 같잖은 후배들을 양산하지 않기 위해, 재즈와 록 등 음악적 뿌리를 학생들에게 심어주려 한다.

서른 여섯의 싱글. 그러나 스스로 현재는 여건이 안된다고 생각할 뿐, 독신주의자는 아니다. “앞으로 당분간은 외롭고 아프게 ‘독약’을 마시며 살아가겠죠…”

양은경기자

ke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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