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교수평의장 홍영재씨"진료포기는 불가피한 선택"
외래진료 중단을 결정한 연세대의대 교수평의회장 홍영재(洪永宰·54·안과·사진) 교수는 9일 전임·전공의 없이 계속된 외래진료에 지친 탓인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홍교수는 의도(醫道)를 가르쳐야 할 교수들마저 환자를 외면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는 참담함을, 그와 같은 현실을 초래한 원인에 대해서는 결연함을 보여줬다.
“환자를 떠난 의사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습니까. 의사가 걸어야 할 길을 가르쳐야 할 교수가 환자를 떠나겠다고 말한다는게 부끄럽고 죄송할 따름입니다. 어떤 절박한 비난도 달게 받겠지만 그 절박함만은 헤아려 주십시오.”
홍교수는 교수들의 외래환자 진료 포기 배경에 대해 “전공의 전임의가 없는 상황에서 최소한 중환자, 응급환자라도 제대로 돌보기 위해 내린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설명했다.
“약사법 개정 문제는 빙산의 일각일 뿐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의사가 소신을 갖고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합니다. 그중 하나가 돈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겠지만‘밥그릇 싸움’으로만 매도하는 건 잘못된 시각입니다.”
홍 교수는 먼저 정부의 성의있는 자세 변화를 촉구했다. 그중 하나가 의료발전특별위원회의 구성 문제. 홍교수는 “의발위에 소속된 사람들이 바로 지금의 의약분업안을 만든 사람들인데 어떤 변화를 기대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홍 교수는 “또다시 이런 사태가 발생해서는 안된다”며 “마지막 기회라고 여기며 내 가족의 장래를 생각하는 심정으로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구로병원 전공의 한상환씨
"우리에겐 미래가 없다"
전공의협의회 소속으로 고려대 구로병원 레지던트 2년차인 한상환(28)씨는 파업 10일째를 맞은 9일 파업에 참여한 전공의들의 마음이라며 먼저 국민에게 머리 숙여 사과부터 했다.
“환자들에게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파업이 옳다고 강변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수련과정을 마치고 개원을 해도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운 현실 속에 막다른 골목에 몰린 예비의사들의 처지를 헤아려 주시길 바랍니다.”
한씨는 개인 종합병원에 근무하다 해고돼 실업자 신세로 전락한 한 선배 의사, 운영난에 직면해 병원 문을 닫기 직전까지 와있는 선배 개업의 얘기를 꺼내며 “내 미래도 그 선배들처럼 암울하기만 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끝없이 쌓여만 가는 업무에다 일주일에 3, 4일은 밤을 새며 24시간 근무를 해야하는 고된 생활 속에서도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의사로서의 자부심, 자존심 때문이었는데 이제 그런 것 마저 무너지고 있습니다.”
한씨는 의약분업이 시행되자 전직(轉職) 전과(轉科)를 심각하게 고려했다.
전국 전임의 1,300명중 10%만 대학에 남을 수 있고 나머지는 운영난이 불보듯 뻔한 개업의나 신분보장이 불확실한 월급의사의 길을 갈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9년동안 신명을 바쳐온 ‘의사의 길’이 후회스러웠던 것이다.
“내과 소아과 전공의들은 ‘전과만 되면 레지던트 4년을 다시 하겠다’는 말까지 합니다. 얼마나 답답하면 시간을 되돌리려 하겠습니까. 이제라도 정당한 진료가 가능한 의료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전공의들의 주장입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서울시 약사회 정운삼의장
"처방전 구경조차 힘들어요"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서 우철약국을 운영하는 서울시약사회 정운삼(62) 의장은 요즘 30년간 운영해 온 약국 문을 닫아야 할 판이다. 의약분업 실시후 매출이 30%나 떨어지고 손님도 급감했다.
“하루에 처방전 40건은 처리해야 겨우 수지가 맞는데 들어오는 건 10건이 안되고 그나마 약이 없어 20~30%밖에 처리를 못해요. 정말 분통 터집니다.”
주변의 동네병원은 의약분업후 문을 닫아버렸고 단골 손님도 “병원에서 처방전을 받아오라”는 말에 자취를 감춰 버렸다.
저소득층이 많은 동네 특성상 일반감기약이나 소화제 정도가 팔릴 뿐 처방전은 구경조차 힘들다. 의약분업 시행내용을 아직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탓인지 드링크류나 무좀약, 물파스조차 안팔린다.
정씨는 “병원은 지정약국에 손님을 몰아주고 제약회사는 소량 주문은 아예 받지도 않는다”며 “동네약국의 50%는 조만간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한탄했다. 정씨는 약국이 셔틀버스로 호객행위를 하고 한약판매에 열을 올리는 것은 약사적 양심을 버린 한심한 작태라고 분개했다.
“약사가 ‘삐끼’나 ‘싸구려 약장사’입니까. 30년 약사생활을 접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요. 의장인 내가 이 지경인데 영세약국은 오죽하겠어요. 자식 약사 안시킨 게 정말 다행입니다.”
그는 일부 병원이 특정약국에 환자를 보내고 처방전 수만큼 리베이트를 받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정씨는 “‘동네약국 환자보내기 운동’을 추진중이지만 병원과 대형약국의 협조가 쉽지 않다”며 “시행초기 혼란과 부작용을 막으려면 제도보완이 필수”라고 호소했다.
배성규기자
vega@hk.co.kr
■소아과의원 10년 배창희씨
“의약분업이 이대로 시행되면 병원 문을 닫아야 합니다. 11년 공부해 의사가 됐는데 생존마저 위협받는다면 현 의약분업을 찬성할 수 있겠습니까.”
서울 도봉구 방학동에서 10년째 소아과 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배창희(43)원장은 의약분업 실시와 의료계 폐업사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배씨는 1982년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9년간의 수련과정을 마치고 방지거병원 소아과장을 거친 뒤 91년 6월 개업, 2~3년전까지만 해도 이 지역에서 꽤 잘 운영되는 병원으로 꼽혔다.
그러나 2년 사이 주변에 병원이 5개나 들어서 환자수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지난해 11월 시작된 ‘의약품실거래가 제도’로 배씨는 결정적인 타격을 입었다.
“수입의 50~60%를 차지하던 약값 마진이 없어지자 매출이 급감했습니다. 의보수가 인상을 통한 보전은 없는거나 마찬가지였죠.”
지난 5월 수입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0% 이상 감소했고 지난달에는 간호조무사 3명중 1명을 내보냈다. 올들어 병원 내부시설 투자는 생각조차 못했고, 겨우 직원 월급과 24평짜리 병원 임대료를 내고나면 빠듯한 수입이다.
배씨는 “이런 상황에서 의약분업이 본격 실시되면 환자들이 동네병원을 찾지 않을 뿐더러 한번 받은 처방전으로 여러번 약을 지을 것”이라며 “의사의 처방료가 약사 조제료보다 적은 현실이 말이 되느냐”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배씨는 또 “대체조제, 임의조제로 인한 약화사고 방지책이나 단속책 등 제대로 준비조차 않고 실시하는 의약분업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며 “도대체 누구를 위한 의약분업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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