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대(對) 재벌전선’에 강성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새로 출범한 진 념(陳 稔) 경제팀은 ‘안정지향형 연성(軟性)팀’이란 세간의 시각을 일축하면서 연말시한을 목표로 재벌개혁에 대한 고삐를 다시 죄고 있다.새 경제팀은 9일 열린 출범후 첫 경제장관간담회에서 금융·구조개혁의 연내 마무리 등을 골자로 한 정책추진방향을 확정했다.
■재벌개혁 후퇴없다
새 경제팀은 취임초 ‘현대 문제를 시장에 맡기겠다’는 발언으로 ‘재벌정책이 느슨해지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다. 그러나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8일 현대 문제를 포함한 재벌개혁의 강력한 추진을 주문한 뒤 압박강도도 한단계 ‘업 그레이드’되는 분위기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달말이나 내달초로 예정됐던 1~4대 재벌에 대한 부당내부거래조사를 16일로 앞당겨 실시키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당초 공정위는 이번 조사의 초점을 벤처·분사기업 중심의 ‘위장계열사’와 이를 통한 변칙 경영권 상속문제에 맞출 예정이었으나 재벌의 ‘심장부’로 비유되는 구조조정본부에 대한 조사를 병행키로 했다.
진장관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개각직후 “현대도 살고 국가경제도 살아야 한다”는 발언은 9일 “시장요구를 외면한 기업치고 살아남은 기업은 없다”로, “원칙은 유지하되 속도는 조절할 의향이 있다”는 발언도 “기업구조조정은 연내 완료한다” “추호의 후퇴도 없다”로 바뀌고 있다.
세부일정으론 이달중 워크아웃 기업 부실경영진에 대한 검찰고발조치가 이뤄지고, 내달 제2단계 기업지배구조개편안을 확정하며, 11월부터는 신(新)워크아웃 제도를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공정위의 1~4대 재벌 조사결과가 발표될 연말에는 또 한차례 파란이 예상된다.
■공적자금 조기조성
정부는 금융구조조정의 연내 마무리 방침 아래 공적자금 추가조성, 지주회사 통합 등 금융현안을 10월까지는 매듭짓기로 했다.
이중 가장 먼저 결론이 나야할 부분은 공적자금 추가조성.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원회는 이달안에 추가소요를 확정, 9월 정기국회에 대략 10조~15조원 규모의 추가조성 동의안을 제출한다는 일정을 세워놓고 있다.
이 자금으로 자력회생 불능 은행을 우량화(클린화)하고, 10월께 금융지주회사로 통합하는 한편 예금보호한도 상향조정여부를 결론지으면 2단계 금융구조개혁의 대장정은 일단락된다는 스케줄이다.
■새로운 과제는 없다
이날 경제장관 간담회에서 그려진 새 경제팀의 정책 밑그림은 전임 경제팀의 방향과 전혀 차별성을 찾기 어렵다. 4대 구조개혁의 연내 완료, 생산적 복지 추진, 저금리-저물가의 거시정책기조, 디지털 인프라 확충 등 변화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재경부 관계자는 “큰 그림은 이미 그려졌던 것 아니냐. 지금은 착실히 마무리할 때”라고 말했다.
하지만 집권 후반부의 새로운 장정이 시작된 만큼 어떤 형태로든 변화와 자극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개혁이 중단되어서는 안된다’는 당위성과 ‘개혁피로감’이 만연하고 있는 현실을 조화시키는, 새로운 개혁스타일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현 경제팀이 ‘안정형’이란 이미지를 씻고, 이같은 ‘창의적 구조조정’을 할 수 있을지는 두고봐야할 문제이며 그 첫 고비는 현대문제가 될 것이란게 일반적 평가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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