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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인터뷰 - 김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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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인터뷰 - 김동기

입력
2000.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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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달이면 고향 근처에 있는 개마고원에서 상쾌한 바람을 맘껏 쐬고 싶다는 김동기(68)씨. 지난 해 2월 출소후 지금까지 광주 통일의 집에 머물고 있는 그와 몇마디를 나눴다.또박또박한 말투, 흐트러지지 않는 자세가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다음 달 초 고향에 가시면 어떤 일을 하고 싶습니까.

“‘내가 과연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내가 벌써 정년퇴직이 훨씬 지난 나이이기 때문이죠. 우선은 아내와 아들에게 그동안 못했던 남편과 아버지 노릇을 조금이라도 해주겠습니다.

그리고는 출소 후 남한 사람들이 내게 보여줬던 따뜻한 마음씨를 내 가족과 북한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겠습니다.”

-부인과 아들의 생사는 확인하셨습니까.

“지난 달 10일 독일에서 전화가 왔어요. 한 독일동포가 북한 이익대표부의 전달내용이라며 아내와 아들이 잘 살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북으로 돌아오면 대대적으로 환영할 준비도 다 돼있다고 하더군요.”

-출소 후 생활은 어떠셨습니까.

“자유롭기는 했지만 갑갑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숙소 근처 파출소에서 한 경찰관이 권총을 차고 집에 쳐들어왔어요.

내가 ‘법원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라’며 완강하게 거부한 끝에야 그 친구는 돌아갔죠. 감옥이 단지 넓어졌을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33년을 교도소에서 보낸 것이 후회스럽지는 않습니까.

“후회는 없습니다. 책 제목처럼 새는 앉는 곳마다 깃털을 남기는 법입니다. 새는 바로 저같은 비전향 장기수입니다.

나의 삶에 감화되는 사람이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비전향 장기수.요즘 이 사람들만큼 우리의 관심을 끌어모으는 이들도 없다.

자신이 믿는 체제와 양심을 지키기 위해 전향(轉向)을 거부하고 최소 20년 이상을 복역한 노인들. 컴컴한 교도소 독방에서 오로지 북녘 고향땅과 부모·자식을 그리워했던 우리의 또다른 이산가족들.

그래서 우리는 6월 30일 남북적십자회담에서 이들의 북송(北送)이 합의됐을 때 크게 박수치며 기뻐했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조금이라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 이들에 대한, 이들의 과거에 대한 우리의 평가는 금세 달라진다.

남한 체제를 전복시키기 위해 특별 지령을 받고 남파된 간첩. 하시라도 ‘이상하면 다시 보고 수상하면 신고해야’ 하는 섬뜩한 존재가 바로 그들의 옛 모습이 아닌가.

법무부가 ‘비전향 장기수’를 지금도 ‘남파 간첩 등 공안사범’으로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달초 北送되는 비전향장기수의 고백록

33년 감옥생활·가족에 대한 그리움 펴내

책은 이러한 혼란만을 우리에게 남겨놓고 다음달 초 다른 동지들과 함께 북한으로 돌아가는 비전향 장기수 김동기(68)씨의 고백록이다.

지난 해 2월 25일 3·1절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후 틈틈이 광고전단 뒷면에 써온 소중한 글들. 무려 33년을 0.75평의 교도소 독방에서 지내야 했던 고단한 삶에 대한 회고이자, 아내와 아들이 기다리고 있을 고향을 그리워하는 애절한 편지이다.

김씨는 1932년 함남 단천에서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평양상과대학을 졸업한 뒤 상업성 상품과장을 지내는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아가던 그는 1964년 결혼해 아들까지 낳았다.

하지만 1966년 4월 ‘통일사업’을 위해 경남 진양군에 남파되면서부터 그의 인생은 확 달라졌다. 별다른 활동도 못한다가 주민 신고로 군경에 체포됐던 것. 그러나 당시는 몰랐다.

이 때부터 지난 해 2월 풀려나기까지 인생의 거의 절반을 교도소에서 보내게 되리라는 것을.

“나는 33년 동안 감옥에 있으면서 보름달을 딱 한 번 본 적이 있다. 1990년 대전교도소 15사동 3층 9방에서 동쪽 야산 위로 솟아오르는 밝은 보름달을 보게 됐다. 25년 만에 보름달을 본 나는 나도 모르게 ‘달이 뜬다!’하고 고함을 질렀다. 그 달은 고향에서 가족과 함께 바라보던 달이었다. 대동강 물위에서 흔들리던 바로 그 달이었다.”

책은 그러나 혹독한 교도소 삶을 자세하게 묘사하지 않는다.

냄새나는 변기통, 그 곳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구더기, 전향을 거부한 데 따른 교도원들의 구타 등 그가 간략하게 서술하는 그 곳 삶은 할리우드 영화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싱겁기까지 하다.

독방의 외로움을 잊기 위해 영어사전을 외우고, 재일동포가 건네 준 통계책을 6년 동안이나 읽었던 일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범주이다.

목구멍 깊은 곳에서 울컥 하는 기운이 느껴지는 것은 오히려 다른 데 있다. 바로 동료 비전향 장기수들의 따뜻한 동지애, 고향 땅을 그리워하는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그들의 마음씨이다.

1969년 대구교도소 수감 시절, 잠깐 합방생활을 하던 동료 신범수씨가 어느날 아들이 약값으로 보낸 500원 중에서 100원으로 식빵과 사탕을 샀다. 그리고는 이날 김씨에게 세끼 때마다 식빵과 사탕을 조금씩 나눠줬다.

그날 밤 신씨는 마지막 남은 사탕 반쪽을 김씨에게 건네며 이렇게 말했다. “오늘이 김 동지 생일이지? 축하하네!”

스스로 믿는 원칙과 양심에 따라 33년을 버텨낸 그 자긍심과 회한, ‘준법서약서’를 써야 할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무법천지에 사는 남한의 국회의원들이라는 날카로운 지적. 결국 책은 남파 간첩으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체험하며 느낀 33년의 세월을 그대로 적은, 유작 아닌 유작인 셈이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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