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2차 세계대전 피해보상을 중재한 미국이 이제 일본에 책임을 묻기 시작했다. 나치 전쟁범죄에 관한 미국내 자료를 조사하는 미국 정부의 나치전범기록 관계부처합동조사단(IWG·Interagency Working Group)은 5월부터 100여명의 공무원을 동원, 일본의 전범기록을 뒤지고 있다.조사단은 미 의회가 1998년 10월 제정한 ‘나치전범공개법’에 따라 빌 클린턴 대통령이 지난해 1월 국무부 중앙정보국(CIA) 법무부 등에서 조사요원들을 선발, 발족했다. 2002년 1월까지 한시적으로 활동하는 IWG는 그동안 약 150만쪽의 나치전범 자료를 공개, 독일의 피해 배상을 유도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기관이 나치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한 직후 일본의 과거사를 추궁하기 시작한 것은 나치전범공개법이 나치 동맹국 정부나 나치의 지원으로 수립된 정부의 전범기록(1933년 3월~1945년 5월)까지 조사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 상원 법사위는 최근 일본군이 자행한 모든 전쟁범죄 자료의 공개를 촉구하는 ‘일본제국군 공개법’을 만장일치로 결의, IWG에 더욱 힘을 실어줬다.
조사대상은 일본군 731부대의 생체실험과 종군위안부, 난징(南京)학살, 강제노역 등 일본이 2차대전중 저지른 전범행위를 총망라한다. 자료 소재파악과 비밀 취급 문서의 해제 작업을 지원하기 위해 8명의 관련 역사학자들이 자문위원으로 참가하고 있다.
IWG의 조사활동은 캘리포니아주 등에서 한국 중국 필리핀 등 강제노역 피해자들이 미국내 일본기업의 법인들을 상대로 제기한 30여 건의 집단소송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IWG가 공개한 자료는 피고측 주장을 더욱 구체적으로 입증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같은 ‘일본 압박’이 종국적으로는 일본기업과 정부를 배상금 협상테이블로 유도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피해자들이 미국에서 소송을 제기, 자국의 만행이 드러나자 기업들과 정부가 공동으로 자금을 출연해 배상금 지급에 나섰다.
그러나 일본은 여전히 1965년 한일기본조약과 1951년 미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방패막이’로 사용하며 피해배상을 완료했다고 주장하는 한편, 자국이 보관중인 자료는 일절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IWG의 조사와 공판 과정에서 강제징용과 강제노역, 위안부 동원, 재산몰수 등 일본의 만행이 구체적으로 공개될 경우 공식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국제여론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여겨진다.
이동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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