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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호가 만난사람] 종로소방서 119구조대 허찬만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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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호가 만난사람] 종로소방서 119구조대 허찬만반장

입력
2000.08.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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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소방서 119구조대 허찬만(許贊万·38) 반장을 만난 건 119구조대를 알고 싶어서였다.그를 통해 119구조대가 왜 모범적 공무원 조직으로 꼽히게 되었고, 왜 다른 공무원 조직은 119구조대처럼 국민들로부터 사랑받지 못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얻고 싶어서였다.

그러니 이 인터뷰는 개인 허찬만을 소개한다기보다는 119구조대를 소개하는 것이 되겠다. 119구조대가 국민의 신뢰를 얻게 된 것은 누구 하나가 잘 해서가 아니라 구조대원 모두가 잘 한 결과일진대 그들 중 누구를 만난들 다른 분석이 나오지도 않을 터였다.

이 글이 찬사라면 그것은 허반장에 대한 것이면서, 동시에 119구조대 대원 모두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구조대 차량 안에서 허반장에게 묻고 대답을 들었다. 봉고 크기의 미니버스다. 차에 실린 장비는 무려 800 종, 2,000여 점. 자동차를 절단할 수 있는 유압절단기부터 맥가이버 칼이라고 불리는 만능 칼까지 실로 다양하다.

이런 정규 장비외에 옷핀이나 송곳도 현장에서는 요긴하게 쓰인다. 차 안에는 화재 현장의 매캐한 냄새가 배어 있었다.

-119구조대는 생명을 구하기 위한 조직이다. 그런데 하찮은 일을 위해 출동할 때도 있어 국민의 세금을 낭비하는 게 아닌가 하는 말도 있다. 그런 일 때문에 출동할 때 어떤 생각이 드는가.

“하찮다는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인데 50대 아주머니가 ‘가게에 비둘기가 들어왔다’며 쫓아달라고 신고해왔다.

출동해서 우리가 한 일은 팔을 두어 번 휘저은 것이 전부다. 장비를 꺼낼 일도 없었다. 하지만 신고를 한 아주머니 입장에서는 하찮은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신고를 했겠는가. 그 분에게는 비둘기 한 마리도 불가항력이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당사자에게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 있다. 우리는 항상 그런 마음으로 출동한다.

어떤 상황이라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만을 생각하며 출동하지, 왜 그걸 신고했을까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민이 우리에게 박수를 보낸다면 바로 시민 입장에서 문제를 생각하고 처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_바로 그게 궁금하다. 수많은 공무원 조직 중 왜 119 대원들만 시민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고 국민이 믿게 되었을까. 봉급이 더 많은 것도 아니고, 근무환경은 오히려 더 열악한데?

“시민들이 월급을 주기 때문이다. 월급을 주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 해야 한다는 게 나와 내 동료들의 믿음이다. 구조대 창설이후 10년이 지나면서 이런 믿음이 시민들에게 전달된 것 같다.”

-다른 공무원도 국민이 월급을 주고 있지 않나.

“어떤 중앙부서에서 엘리트로 꼽히는 사무관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내가 ‘업무를 기획할 때 어떻게 준비하느냐’고 물었더니 ‘장관이 No할 때와, OK할 때 두 가지 모두에 대비해 준비한다’고 말하더라.

엘리트라는 사람이 이렇게 대답하는 것을 듣고 놀랐다. ‘이 업무가 시민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생각한다’라는 말은 없었다.

그에게는 ‘내가 하는 일을 상급자가 좋아하나, 안 하나’가 중요하지 시민에게 어떤 혜택이 가는가는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시민보다는 자신이 속한 조직의 이익과 그에 따른 자신의 이익을 먼저 따지는 것으로 보였다. 그 분들은 119가 기획업무를 하지 않고, 정책부서가 아니어서 실상을 모른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공무원은 항상 시민을 우선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시민이 우선’이라는 그의 말은 ‘고객을 우선으로 생각하라’는 최근 경영학계의 가름침과 같다.

경영개혁 전문가들은 ‘흥하는 기업은 고객만족을 최우선 가치로 하고 있으며, 조직을 우선으로 하는 기업보다 월등 뛰어난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전한다.

어떤 전문가는 ‘기업의 목표는 이윤창출이 아니라 고객만족이 되어야 한다. 고객이 만족해야 이윤이 나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고 까지 말하고 있다.

허반장의 말은 시민을 만족시키다보니 119에 대한 시민의 절대적 호응이라는 ‘이윤’을 얻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시민이 우선이라는 개념은 교육을 통해 형성된 것인가.

“봉사는 책 속의 구절이 아니라, 행동에서 나온다. 교육도 중요하지만 군대 경험이 우리로 하여금 시민을 우선토록 했다고 본다.

119구조대원들은 거의 대부분이 특전사나 해군UDT 등 특수부대 하사관 출신이다. 이런 군 경력은 우리에게 단순히 위험한 곳을 찾아 들어가는 용감성만 심어준 것이 아니다.

이해를 해줄지 모르겠지만 특수부대 출신들은 ‘순수’한 사람들이다. 10년 가까이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적을 섬멸하는 훈련을 되풀이 한 탓에 다른 생각은 해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런 자세 때문에 119에 들어와서도 시민에게 충성하게 되는 것이다. 국가에 대한 충성은 곧 시민에 대한 충성 아닌가.”

“또 ‘살려달라’는 애원과 비명이 넘치는 사고현장에 가면 다른 마음이 생길 수 없다. 삼풍 사고 때 한 달이나 현장에서 버텼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구해달라’는 애절한 소리가 들리는데 어떻게 일이 힘든다고 빠져나올 수 있나. 일반 시민도 그런 현장에 있으면 우리와 같은 마음이 될 것이다.” 그는 삼풍사고 당시 11일 간 건물더미에 깔려있던 최명석군을 구조한 사람이다.

-훈련과 교육은 어떻게 하나.

"소방학교서도 훈련받고 자체교육도 많이 한다. 시민들이 요구하는 것이 워낙 다양해져 교통사고, 화재, 산악구조, 수상구조, 수해구조, 천연기념물 등 동물구조, 전기사고, 화학·방사능사고 등에 대비해 교육을 받는다."

-전혀 생각못한 사고 현장에서는 어떻게 대처하나.

“우리에게는 위기관리능력이 가장 필요하다. 어떤 사고에 대해서도 판단하고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건 교육갖고 안되고 경험이 쌓여야만 한다.

-위기때 최종 결정은 누가 하나,

“현장의 최선임자가 한다. 물론 대원 의견을 참조한다. 어떤 상황이라도 빠른 방법보다는 가장 안전한 방법을 선택한다.”그는 빠른 방법을 선택할 경우 2차 사고가 생길 수 있다며, 우리나라에 유독 사고가 많은 것은 모든 사람들이 안전한 방법보다 빠른 방법을 찾기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지휘자가 되면 사고 현장에서 대원의 생명과 시민의 생명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가 있을텐데 어떻게 결정하나.

“그런 선택이 필요할 때는 반장인 내가 들어가야겠지. 아직까지 그런 상황에 처해본 적은 없다.”

-대원들 간의 상호신뢰가 없으면 안된다는 이야기인데 상호신뢰는 어떻게 형성된다고 보나.

아까도 말했지만 현장에 나가면 오직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다. 현장에서는 그 일념 하나로 작전하고 지시하고 준비한다.

이 과정에 모든 대원이 참여하고 가장 좋은 구조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면서 믿음이 생긴다.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 사이에 믿음이 안 생기면 이상한 것 아닌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특전사에 입대했던 그는 1988년 중사로 제대한 당일 119구조대 창설요원이 됐다. 부천의 20평짜리 아파트에서 부인과 아들 하나와 함께 살고 있다. 7급 공무원인 그의 한달 평균 보수는 150만원.

-119구조대는 시민들로부터 아무런 대가를 받지 않는다고 들었다. 시민들의 마음에서 우러난 감사의 표시도 거절한다고 하는데 그런 전통이 어떻게 생겼다고 생각하나.

“아무 것도 안 받는 건 아니다. 현장에서 물이나 음료수 정도는 대접받는다. 그러나 돈은 절대 받지 않는다.

구조대 창설때 몇 사람이 약속했다. 새로운 전통을 세우자, 우리는 명예를 지키자고 보이지 않는 약속을 했다. 처음에 안 받다가 보니 금방 전통이 됐다. 그게 전부다.”

(소방서에는 사고 현장에서 인명을 구조하는 119구조대 외에 응급환자 처치, 이송 등을 맡아 하는 119구급대도 있다. 119구급대 역시 모범적 조직으로 시민들의 찬사를 받고 있다. 119구조대에 대한 박수는 119구급대에 대한 박수이기도 할 것이다.)

▥ 조직개혁전문가가 본 119

기자에게 119구조대 사람을 만나라고 주문한 사람은 경영개혁전문가인 구본형(具本亨·사진·변화경영연구소 소장)이다.

그는 119조직은 우리나라 공무원 조직은 물론 민간기업의 모델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음은 그가 분석한 119조직이다.

언제 어디서나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부르면 가야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은 고되다. ‘박봉에 힘든 일’은 누구도 원치 않는다.

그러나 그런 일에 정열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119를 이용해 본 사람들은 그들에게 진심으로 감동한다. 어렵고 당황스런 일을 힘껏 도와 주기 때문일 것이다.

더욱 잊을 수 없는 일은 그들이 하나같이 당당하고 깨끗하다는 점이다. ‘진심으로 고마워서’ 조심스럽게 내미는 사례의 표시조차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부패의 고리로 부터 자유롭기가 참으로 어려운 이 땅에 이처럼 열정적인 조직이 생겨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한국의 조직들은 지금 정신적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사람이 가장 중요한 지식 사회에서 일에 대한 열정을 가진 구성원으로 가득한 조직을 만들어 내는 것이 급선무다.

외국 기업의 사례로 부터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정신은 우리 풍토에서 자생된 것일 때 다른 조직으로 이전 가능하다.

119가 119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자율성이다. 현장에서 그들이 믿는 것은 자신과 동료뿐이다. 위급한 상황에서 그들은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한다.

상사가 기대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최선을 다하고 스스로 책임진다. 이러한 자율성이 바로 그들을 견디게 하고 자긍심을 갖도록 한다.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훈련하고 연습해야 한다. 평소의 훈련이 자기를 믿고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전문성을 쌓게 한다.

직원이 직장을 떠나지 않고 맡은 일에 열정을 쏟아 붓기 위해서는 그 일을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자율성이 전제되어야한다.

책임도 영광도 함께 따라야한다. 동시에 최선의 판단이 가능하기 위한 전문성이 평소에 늘 배양되고 계발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져야한다.

자율성과 훈련, 이것이 바로 다른 조직으로 그 활력을 이전 가능하게 만드는 119의 비밀이 아닐까.

편집국 부국장

soong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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