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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색21](36) 열한번째 계명-우리들 안의 짐승 들여다보기

입력
2000.08.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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善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惡을 낳을 뿐이다좋은 뜻이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善意)로 포장돼 있다”는 서양 격언은 사물의 그런 이치를 깔끔한 비유로 드러낸다.

중세 종교 전쟁의 지휘자들에서부터 지난 세기의 공산주의자들에 이르기까지, 지상에 천년왕국을 세우려 한 위대한 기획자들은 한결 같이 정의에 대한 열정을, 곧 선의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시도들은 역사의 갈피마다 무수한 시체를 남겨놓은 채 파산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하나의 위대한 기획이 막을 내렸다.

그 무너진 장벽의 잔해 위에서, 프랜시스 후쿠야마를 필두로 한 제1세계의 지식인들은 한 목소리로 역사의 종말과 선(善)의 개선(凱旋)을 노래했다.

선의 충동으로 악을 구현한 그 거대한 기획의 종말 뒤에, 이제 남은 것은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름의 진정으로 선한 유토피아인 것처럼 보였다.

역사는 악과 결별했고, 약간의 사소한 수리(修理)만을 남겨놓은 것 같았다.

프랑스의 철학자 앙드레 글뤽스만의 ‘제11계명’(1991)은 이런 역사적·도덕적 낙관주의에 코웃음을 친다.

우리는 역사의 종말에 다다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역사 속의 악과 이별하지도 않았다고 그는 말한다.

왜냐하면 역사 속에서 거대한 전체주의적 디자인의 설계자들을 부추긴 것은 지금 우리가 이루었다고 믿는 선(善)의 관념이고, 바로 그 선의 관념은 아직도 인간의 내면에 완강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 선의 관념은 ‘깡패 국가들’을 선도하거나 제거하려는 미국의 의지를 강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부패한 서방’에 맞서는 제3세계 국가들의 십자군 전쟁을 격려하고 있기도 하다.

선에 대한 집착은 곧 순수에 대한 강박, 온전함에 대한 갈증이고, 그것들은 불가피하게 종교적·정치적 근본주의로 이어진다.

자신을 천사라고 믿는 이런 근본주의자들은 이단과 악마에 대한 살육과 파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천사증(天使症)이라고 부를만한 이런 파괴적 순수주의는 독실한 신자들이나 이념의 추종자들에게만이 아니라, 우리들 모두에게 내재해 있다.

그러면 어떻게 이런 천사증을 치유할 수 있는가? 글뤽스만은 우리 안의 악을 늘 의식해야 한다고 대답한다. 그 대답은 너무 밋밋하다.

그러나 그가 그런 내재적 악의 의식화를 요약해 놓은 계율은 우아하다. “비인간적인 어떤 것도 네게 낯설지 않게 하라.” 모세가 하느님에게서 받은 십계명에다가, 글뤽스만은 열한번째 계명을 추가한 것이다.

‘제11계명’은 20세기 역사에 대한 글뤽스만의 성찰이 낳은 새로운 계율이다.

그것은 프랑스인의 손을 통해 정식화된 계율이지만, 앵글로_색슨 전통을 이루는 소극적 윤리의 계보를 잇고 있다. 왜 소극적인가? 그것은 선의 최대화보다는 악의 최소화나 회피를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20세기는 1914년의 제1차세계대전 발발로 시작됐다.

그 세기는 ‘전쟁과 혁명’이라는 표제의 두툼한 앨범 안에다 베르덩 전투, 스페인내전, 스탈린그라드 전투, 아우슈비츠와 난징의 대학살, 베트남 전쟁, 크메르루주의 킬링필드, 강제노동수용소와 문화혁명, 유고내전 등 유혈이 낭자한 사진들을 꽂아놓고 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적 규모의 전쟁이 일어난 1914년 이전까지만 해도, 교양 있는 유럽인들은 “비인간적인 어떤 것도 내 속성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전쟁은 그런 자신감의 뿌리를 흔들었다.

그 커다란 전쟁의 충격 속에서, 아포칼립스(묵시)라는 말은 그 뉘앙스를 바꾸었다. 그리스어로 ‘드러냄’이라는 뜻을 지닌 아포칼립스는 그 전쟁 뒤에 ‘재난’이나 ‘세계의 비극적 종말’과 동의어가 되었다.

그 뒤에 펼쳐진 20세기 역사는 아포칼립스의 그런 뉘앙스를 더 강화했다. 휴머니즘에서 출발한 진보주의적 환상들은 이제 차가운 자기 해부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 진보주의적 환상들의 가장 커다란 기획은 지난 89년 베를린 장벽과 함께 무너졌지만, 그런 무모한 환상을 가능케 한 심리적 기반으로서의 천사증은 아직도 치유되지 않았다.

순수에 대한 열정으로서의 이 천사증은 오늘날 근대적 서방에 맞서는 폭력적 반동으로서의 종교적·정치적 근본주의라는 형태로 제3세계에서 구현되고 있다.

그 근본주의적 충동은 과거에 나치즘이나 스탈린주의 같은 무신론적 전체주의의 핵심을 이루던 충동과 다르지 않다.

모든 전체주의적 이상 안에는 특정한 형태의 근본주의가 있다. 오늘날 제3세계의 소규모 전체주의들은, 그것이 좌익 전체주의든 우익 전체주의든, 서방의 ‘도덕적 타락’을 끊임없이 지적하면서 자신들에게 역사적 사명을 부여한다.

그 역사적 사명이란, 악하고 낡은 무질서를 걷어내고 그 자리에 선하고 새로운 인간의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근본주의의 이런 메시아주의적, 선악 이분법적 사명감을 강화하고 갱신하는 것은, 과거의 전체주의 사상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역사의 의미’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다.

역설적인 것은, 순수와 선에 대해 집착하며 우리들 안의 ‘비인간성’으로부터 애써 시선을 돌릴수록, 지상의 현실은 점점 지옥에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악을 근절하려는 야심이 재난을 불러일으킨다. 천사가 되고자하는 강박은 짐승을 낳는다.

세기 전환기의 종교적·정치적 근본주의 안에서, 반동과 혁명의 대립은 더 높은 이념_젖과 꿀이 흐르는 낙원으로의 귀환의 약속에 대한 믿음_에 의해 해소되고 추월된다.

그래서 근본주의자들은 가장 반동적인 동시에 가장 유토피아적이다. 또 근본주의자는 자신의 행동을 일종의 ‘자살적 이성’ 위에 설계한다.

그 자살적 이성에 의해 전쟁은 순교나 홀로코스트(대학살) 같은 희생 제의가 된다.

근본주의자들에게 폭력은 성스러운 역사의 원동기(原動機)일뿐이다. 그 결과는 데카르트 명제의 참혹한 변형이다. “나는 (나를) 죽인다, 고로 나는 (성화되어 순수하게) 존재한다.”

그러나 세속 도시는 결코 성스럽지도 순수하지도 않다. 그것을 직시하는 것은 삶과 세계의 모델을 포기하는 것이어서 그리 매력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그 진실에 눈을 감고 “인간적인 것은 무엇이든 내게 낯설지 않다”고 선언하는 것은 근본주의로 가는 지름길이다. 새로운 휴머니즘, 모든 거짓 선지자들에게 맞설 수 있는 효과적인 휴머니즘은 글뤽스만의 새로운 계명 속에 구현된다.

그 계명이 바로 “비인간적인 어떤 것도 네게 낯설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다. 늘 자기 안의 악을 직시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선을 증진하려는 노력이 아니라, 악을 감소하려는 노력이다. 그래서 이 제11계명은 이렇게도 번역할 수 있다.

“최선에 대해서 동의할 수 없으니, 최악에 맞서서 상통(相通)하기.” 요컨대 글뤽스만이 우리에게 권고하는 것은 만류(挽留)의 도덕, 곧 소극적 도덕이다.

이 만류의 도덕은 대문자로 시작되는 인간(l'Homme)을 부정함으로써 시작된다.

편집위원

aromachi@hk.co.kr

■佛철학자 앙드레 글뤽스만에 대하여

극좌서 反전체주의 변신, 보스니아등 현실 참여

앙드레 글뤽스만은 1937년생이다. 그의 사상적 궤적은 좌우를 넘나들었지만, 그런 편력 속에서도 그가 일관되게 탐구한 것은 악의 다양한 형태들이었다.

글뤽스만은 그 악에 맞서는 행동적 지식인으로서 ‘소극적 윤리학’라고 부름직한 반유토피아주의에 안착했다.

글뤽스만의 첫번째 저작은 ‘전쟁론’(1967)이다. 전쟁이라는 주제는 현대의 철학자들이 좀처럼 다루지 않는 것이지만, 글뤽스만에게는 그것이 악의 문제를 탐구하는 출발점이었다.

그 세대의 많은 좌파 프랑스 지식인들처럼 그도 마오처퉁주의자로서 자신의 사상적 편력을 시작했고, 당대의 프랑스 지성계를 감염시킨 극좌적 분위기에 휩쓸렸다.

그러나 68년 5월 혁명 이후, 특히 솔제니친의 작품들이 프랑스에 알려진 70년대 이후, 그는 ‘신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반(反)마르크스주의를 이끌며 과격한 사상 전향을 했다.

글뤽스만이라는 이름을 유명하게 만든 ‘사상의 거장들’(1977)에서 그는 마르크시즘만이 아니라 계몽주의와 거대 철학들의 해방적 전통을 단호히 비판함으로써 반(反)전체주의적 입장을 명확히 했다.

그런 해방적 전통은 관념론으로 추락하며 역사 속에서 최악의 정치적 기획을 도왔다는 것이 비판의 근거였다.

글뤽스만에 따르면 윤리는 선에 대한 욕망에서 나올 수 없고, 오직 악에 대한 저항에서만 나올 수 있다.

‘사상의 거장들’은 그의 이런 이념적 선회를 선명히 보여주면서, 그를 “마르크스는 죽었다”는 명제로 요약되는 신철학파의 대표적 인물로 만들었다.

그는 1978년 가을에 사르트르, 아롱과 함께 남베트남 출신의 보트피플을 돕기 위한 ‘베트남에 배를’ 운동을 주도하면서 사르트르와 아롱 사이의 화해를 주선했고, 그 뒤에도 보스니아 내전이나 에이즈 같은 현실적 문제에 개입하며 참여적 지식인으로서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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