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와 고려대 연세대가 2002년 입시 때 기초학문 분야에 한해 정원의 30% 정도는 학과별로 신입생을 뽑게 해달라고 교육부에 요청했다고 한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고사를 막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이해된다.이들 대학은 두뇌한국(BK) 21 사업자금을 받는 조건으로 교육부의 모집단위 광역화 요구를 수용했었다. 그러나 수천명의 신입생을 4~7개 계열로 나누어 모집하면 전공학문 선택 때 문학 역사 철학 같은 인문학 분야와, 물리 화학 수학 같은 기초과학 분야에 지원자가 없어질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해 우리는 이들 대학의 요구가 지극히 당연하며, 따라서 교육부는 이를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광역 모집단위로 학생을 뽑으면 해당계열내 인기학과로만 학생이 몰리게 된다.
기초학문 분야 지원자가 없어 물리학과 같은 중요한 학과가 폐과되는 사례가 학부제 상황에서도 속출하고 있다. 교양과정에서도 역사 철학 자연과학 강좌가 수강생 부족으로 폐강된 학교가 생겨나고 있으니, 이들 학문은 뿌리부터 고사해 가고 있는 셈이다.
서울대 자연대는 96년부터 12개 전공의 신입생을 단일계열로 뽑고 있는데, 지난해 전공선택 때 재학생 대다수가 전산학과 분자생물학과 같은 응용과학 분야를 택했고, 천문학과 대기학과 등은 몇사람에 그쳐 학과 운영이 어렵게 됐다.
인기학과 지원 탈락생 20여명은 무전공을 택했다. 인문계의 경우 영문과 신방과 사회학과 등에는 몇 백명씩 몰려 수강신청 제한사태까지 일어나고, 철학 사학 윤리학 심리학 같은 학과의 경우 학생이 교수보다 적은 대학이 많다. 교수들은 학문적 대물림이 불가능한 상황을 한탄하며 스스로 폐인을 자처하기도 한다.
학부제보다 모집단위가 더 커지면 학문의 부익부 빈익빈(富益富 貧益貧) 현상이 더욱 고착될 것이 뻔하다. 그렇게 되면 전통적인 인문학과 자연과학 같은 기초학문의 뿌리가 말라죽는 사태가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모든 응용학문의 토양인 기초학문이 고사한 상태에서 어떻게 창의력과 독창성 있는 인재양성을 기대할 수 있으며, 과학기술 진흥과 21세기 신지식인 교육을 운위할 수 있겠는가. 시장경제의 원리가 세상을 지배하는 신자유주의 시대라 하지만 교육이 지나치게 신자유주의 정책에 치우치고 있다는 비판을 경청해야 한다.
학부제와 모집단위 광역화는 1~2년간 공부해 보고 적성에 맞는 학문을 선택할 수 있고, 학문의 벽을 허물어 인접학문을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기초학문 고사를 방치하면서까지 고집할 제도는 아니다.
입력시간 2000/08/02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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