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동안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시고서도 주옥 같은 작품을 해 내시고 후배들 전시에 모습을 보이셨던 선생님이시기에 설마 이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등지실 줄 몰랐습니다.한국 근대미술을 이끌어 줄 원로대가가 많지 않은 우리 화단에서 선생님의 별세는 큰 손실이자 무엇으로도 메꿀 수 없는 빈 자리를 남겨 놓으셨습니다.
더구나 선생님께서 20여 년 동안 각고하셨던 입체회화의 진수를 다 보여주지 못한 채 홀연히 떠나버리시어 그 애석함이 하늘에 닿습니다.
“이제는 그림이 무엇인지 조금 알겠어. 이제 일어서면 멍멍한 그림, 형체도 색채도 도가 넘어버린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시며 두 눈을 지그시 감으시던 선생님. 작년에 미술관을 만드시고 얼마나 기뻐하셨는지요.
많은 화랑들의 출품 요청도 사양하시고 선생님의 작품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으신 미술관을 보시며 기뻐하시다가도 “김일해씨, 몸이 좀 나으면 조각 작품도 함께 보여주고 싶네” 하시던 그 말씀이 아쉬움으로만 남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을 뵌 지 17년이 되었고 가까이 모신 지 15년이 되었습니다.
1985년 선생님이 대구 이목화랑에서 도화전을 하실 때부터 선생님을 따르고 모시면서 저는 그림의 참 맛을 깨닫게 되었으니 선생님은 제 화업의 스승이었습니다.
선생님은 그림 뿐 아니라 인생의 진리, 살아가는 규범까지 잔잔한 말씀으로 가르치셨으니, 제 인생의 사부이기도 하셨습니다.
가까이 선생님을 모시면서 정말 놀라웠던 것은 끝을 모를 박학다식이었습니다.
작업의 솜씨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대학에서 미술사를 강의하셨던 만큼 조형이론에도 깊은 소양을 지니고 계셨습니다.
거기에 고고한 인품, 그래서 때론 선생님을 겉으로만 아는 사람들은 선생님께 거부감을 가진 사람도 있었겠지만 그것이야말로 예술가의 기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대개의 원로 대가들이 고착된 작품 세계를 고수하고 있는 것에 비해 선생님께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연구하시고 좋지 않은 건강에도 불구하고 작업과 씨름하셨지요.
재작년부터인가 작업을 제대로 못하시면서 얼마나 낙담하고 괴로워하셨는지요.
오늘 영전에 엎드려 돌아보니 그것이 선생님의 유일한 한이셨을 테고, 그 한을 풀어드리지 못한 것이 가슴에 사무칩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또한 선생님을 은애하시는 하느님의 뜻이오니 이승에 뚝 남긴 선생님의 이름과 예술을 후세들이 기리도록 하시고 부디 영면 하옵소서.
선생님은 가셔도 그 빛나는 예술은 만대에 빛나리니 편히 가소서. 편히 가시옵소서.
金一海(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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