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컨대 나를 키운 것은 진리가 아니고 길이었다.”고은(67) 시인은 기행 시집 ‘히말라야 시편’(민음사 발행·사진)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번 시집은 1997년 7월 고시인이 40여 일 간 티베트 지역을 떠돌았던 경험을 담은 117편의 시와 기행문 6편을 수록한 것이다.
그는 “누가 진리를 말하는가, 진리를 말하자마자 진리는 손상된다”며 구도 여행을 떠나는 순례자처럼 길의 여정, 거기 서 있는 자연의 웅대함, 그 주변에서 만난 소박한 사람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중국 시안(西安)에서 시작한 고시인의 여정은 둔황을 거쳐 라싸, 창탕고원, 사파랑 등 히말라야 지역으로 이어졌다.
해발 6,500㎙의 히말라야 산자락에서 그는 산소 부족으로 사경을 헤매기도 했고 이때문에 체중이 10㎏이나 감소했다.
그 후유증으로 귀국 후 일 년 동안은 그 정력적 글쓰기도 중단해야 했고, 여행 중 어머니의 임종도 하지 못했다.
그가 이번 순례기를 통해 젊은이들에게 들려주는 것은 ‘느린 걸음걸이’로 떠나라는 것이다.
‘좀 느린 걸음거리면 된다/ 갑자기 비가 오면/ 그게 그대 옛 친구이니/ 푹 젖어보아라// 가는 것만이 아름답다/ 한 군데서/ 몇 군데서 살기에는/ 너무 큰 세상// 해질녘까지/ 가고 가거라’고 그는 시집의 서시 ‘그대 순례’에서 말한다.
광대한 자연 앞에서는 ‘뉘우칠 것이 있다/ 두 번으로도 모자란다/ 세 번으로도 모자란다/ 사막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일생을’(‘알리 사막’ 부분)이라 그는 절감한다.
수메르 산 언저리에서는 빈약한 자원과 혹독한 기후에도 불구하고 이타적 사고와 생래적 지혜로 평화로운 모듬살이를 하고 있는 티베트 민중의 공동체를 보고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수행자들이라 한다.
‘누덕누덕 여벌옷 한 벌/ 굵은 소금 얼마/ 이것이면 산 기슭 몇 달 동안을 지낸다/ 가난이 가난일 줄 모른다’(‘빈 깡통’부분). 그들의 삶의 형태가 그 자체 거룩한 종교라고 그는 깨닫는다.
여행의 마지막에서 그가 회귀하는 곳은 바로 이런 지상의 삶이다.
‘하늘 속 흰 산들이 또 이어져 있었다/ 7천 미터 이상 40 봉우리 말고 또 이어져 있었다/ 내려가자/ 내려가/ 올라가는 것은 도저히 진리가 아니다’는 것이다.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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