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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생각] 프랑스 문화부장관 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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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생각] 프랑스 문화부장관 귀하

입력
2000.07.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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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시작된 외규장각 도서 반환을 위한 우리나라와 프랑스간 협상 3차 회의가 뚜렷한 성과를 남기지 못한 채 끝나고 말았다.그간 우리나라가 해외에서 약탈한 문화재들이 얼마나 되는지 잘은 모르겠다. 예를 들어 과거 역사에서 우리나라가 해군 함정을 파견해 외국을 침략해서, 이를 테면 파리의 에펠탑 같은 걸 통째로 들여다가 국내에 보관한 사실이 있다고 치자.

덩치가 너무 큰 탓에 에펠탑의 예가 좀 거식하다면 다른 품목으로 바꿔도 무방하다. 예를 들어 왕실의 제례와 의식을 그림으로 설명한 의궤류를 비롯해서 우리의 외규장각 도서에 해당하는 귀중한 문화재들을 어떤 솜씨 좋은 한국인이 외국 박물관에서 감쪽같이 훔쳐 국내로 반입했다고 치자.

만에 일이라도 그런 것이 아직 국내에 남아 있다면 당장 원래의 소유국에 되돌려줄 것을 우리 문화관광부 장관에게 강력히 촉구한다. 예를 들어 우리 대통령이 국빈으로 초청받아 그 나라의 수도를 방문해서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문제가 되는 약탈 문화재의 반환을 약속한 사실이 있다고 치자. 더구나 그 약속이 자그마치 십년 묵은 것이라고 치자. 강산이 변할 만큼 세월이 흐르도록 차일피일 시간을 끌면서 아까워 되돌려주지 않으려 언제까지고 꾀만 부릴 일이 아니다.

당장 되돌려줘야 한다. 그것도 그 문화재 대신 그에 준하는 다른 문화재를 담보로 잡네 어쩌네 하는 따위 구차한 조건을 달아 빌려주는 형식이 아니라 아무런 조건 없이 그야말로 화끈하게 되돌려줘야 한다. 우리 대통령이 그 나라 국민들 앞에 괜히 자청해서 그런 약속을 했겠는가.

남의 것을 훔쳐 내 소유물인 양 지니는 행위 자체가 옳지 않은 짓임을 인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의 대통령은 한국인 전체를 대표하는 인물이고 대통령의 약속은 곧 한국인 전체의 약속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그 대통령이 이미 현직에서 물러났거나 작고했다 할지라도 임기중 대통령의 약속은 당연히 다음 정권으로 계속 승계되는 법이다.

천민 출신으로 어찌어찌 재산을 모은 사람 중에 남의 족보를 돈 주고 사서 양반 행세를 하는 경우가 옛날에 종종 있었다. 일확천금을 한 벼락부자들 중에 호화 주택을 장만하고 비싼값으로 남의 집안 고가구들을 몽땅 사들여 실내를 그럴싸하게 꾸미는 일이 근래에 크게 유행했다.

돈의 위력을 빌려 남의 물건으로 자신의 한미한 과거를 얼버무리려는 그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 해서 과연 자신의 삶이 돈으로 산 족보나 고가구의 원소유주의 삶과 똑같아질 수 있을까. 남의 물건으로 꾸미고 느끼는 자부심을 과연 진정한 자부심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무력으로 남의 나라를 침략해서 문화재를 노략질해다가 자기 문화재인 양 자랑하고 돌려주지 않으려 억지를 쓰는 행위는 도무지 문명국의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밀림 속 야생계의 행태이며 제국주의가 판을 치던 야만적 시대의 부끄러운 잔재일 뿐이다.

지금은 국제법이나 국내법 모두 문화재의 약탈을 범죄시하는 21세기 대명천지다. 불법으로 취득한 장물은 소유권을 인정받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되는 세상이다. 사정이 이런 판에 훔친 에펠탑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반환을 꺼린대서야….

반만년의 역사를 가진 문화민족으로서 우리는 남의 나라를 무력으로 침략해서 약탈한 남의 문화재로 꾸미면서까지 우리가 문화민족임을 새삼스레 세계에 광고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야만의 상태에서 뒤늦게 벗어난, 일확천금의 졸부 같은 나라들이나 할 법한, 비신사적이고 반문명적인 행동임에 틀림없다.

만일 프랑스에서 약탈한 에펠탑 같은 문화재를 우리 정부가 보관하고 있다면, 즉시 프랑스에 반환할 것을 문화관광부 장관에게 다시 한 번 강력히 촉구하는 바이다. 아울러 기왕 반환하는 김에 일본이나 미국, 영국 등 역사가 짧은 다른 나라들에게 약탈한 여타의 문화재들까지 몽땅 다 되돌려줄 것을 21세기 문명의 이름으로 당부해 마지않는다.

/윤흥길 소설가·한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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