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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상봉 행운 '100명'부터 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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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상봉 행운 '100명'부터 깨자

입력
2000.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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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세 오마니가 살아 계시다니….” 약속이나 한듯, 28일 아침 이땅의 신문들은 1면에 똑같은 제목과 똑같은 사진을 실었다. 일흔고개를 넘긴 실향민이 50년동안 몽매에도 그리던 어머니의 북녘땅 생존 소식을 확인했다는 뉴스는, 모든 한국인의 심금을 흥건히 적셨다.71세 아들과 109세의 어머니가 함께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가 얼마나 큰 축복인가. 하물며 세상을 떠난 것으로 보고 30년동안 제사를 모셔온 끝이었다니, 이런 기적이 또 어디 있으랴. 철조망 한 줄을 경계로 반세기 넘게 1,000만 혈육과 친척이 강제로 헤어져 사는 곳은 여기 한반도 말고는 없다. 이 기막힌 뉴스에 기뻐하고 눈물흘리지 않을 이 세상 사람도 다시 없다.

90세 아버지가 환갑 넘은 아들의 안부를 확인한 사례, 북에 가족을 두고 온 사람끼리 맺어진 이산가족 부부가 따로따로 처자와 아들의 생존을 확인한 이야기 등등, 어느 것 하나 대하소설 감이 아닌 사연이 없다.

처자 5명이 모두 살아있음을 확인한 노인이 있는가 하면, 아무도 살아있지 않으리라는 체념이 사실로 확인된 사람도 많았다. 어느 세상, 어느 일에나 행복과 불행이 공존한다는 천리가 새삼스럽다. 우리측이 북측에 생사확인을 요청한 200명 가운데 생사가 확인된 사람은 138명으로, 이중 126명은 가족 친척이 1명이라도 살아있는 경우이고, 12명은 모두 사망했으며, 나머지는 확인이 안되었다.

109세 노모의 생존을 확인한 장이윤(張二允) 할아버지는 부모 찾기에 나선 98명의 신청자중 생존이 확인된 유일한 케이스다. 그의 꿈같은 행운의 뒤편에는 97명의 비탄이 가려져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된다.

아니, 어찌 97명 뿐이랴. 남한에 살고 있는 이산가족은 1세대만 해도 123만여명이다. 이 가운데 가족상봉 신청을 했다가 탈락한 사람이 7만6,000명이 넘는다. 이번 일을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은 상설 면회소 설치로 발전하는 등 기회가 크게 확대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50년을 기다리다 체념하다 겨우 희망을 갖게 된 그 많은 이산가족들의 피멍 든 가슴을 생각하면, 첫번째 행운이 100명에게만 돌아간다는 사실은 너무 안타깝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에 생사가 확인된 사람들만이라도 100명씩이라는 합의안에 관계 없이 모두 가족을 만나게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세기만에 혈육이 살아있는 사실을 확인하고도 만나지 못함은 또 한번의 이산이나 다를 바 없다.

상봉 대상자로 뽑힌 400명중 70여명이 지난 한달동안에 세상을 하직했다. 생존확인자 모두가 서둘러 만나지 않으면 안되는 이보다 더 절실한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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