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땅은 항상 개발의 대상이었다.그러나 최근 경주 김씨 문중 등은 경기 용인시 수지읍 일대 30여만평을 그린벨트로 묶어달라는 청원을 내 반향을 일으켰다.
국민이 힘을 모아 공공소유의 땅을 넓히자는 내셔널 트러스트(National Trust)운동을 펴온 단국대 조명래교수와 경주 김씨 문간공파 대지종회 김교선 회장이 만나 땅을 지켜야 하는 이유에 대해 얘기했다.
조상이 물려준 생명의 땅
우리도 후손에 물려줄 의무
그린벨트 요청후 격려 쇄도
- 다들 그린벨트를 풀어달라고 아우성인데, 김회장님은 도리어 그린벨트로 묶어달라고 해 사람들이 그 이유를 매우 궁금해합니다.
▲김교선 = 간단합니다. 우리 조상이 500년간 살아온 땅을 지키고 싶어서지요.
그린벨트 지정을 요청한 산에는 조상 묘가 185기나 있어요. 그 분들이 살았고 또 지금은 잠들어 있는 곳을 후손들이 어찌 함부로 처분할 수 있겠습니까.
꼭 그것뿐만도 아니에요. 그곳은 산림이 울창해 좋은 녹지·휴식공간이 되고 있거든요. 그런 곳을 아파트촌으로 탈바꿈시킬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조명래 = 저는 이번 일에 아주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엄청난 재산상 손실이 있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린벨트 지정을 요청했으니 웬만큼 작심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봅니다.
▲김교선 = 그 때문에 일부에서는 우리가 돈을 더 받기위해 그런다고 의심합니다만, 전혀 그렇지 않다고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어요. 돈으로 치면 한국토지공사가 책정한 수용가격(평당 평균 25만원)으로도 충분합니다.
▲조명래 = 그린벨트는 주민 현실을 도외시한채 강압적으로 지정돼있었기 때문에 부작용이 컸습니다. 취지도 살리기 어려웠죠.
그런 점에서 주민이 자발적으로 나선 이번 청원을 녹지 보전이라는 원래의 취지를 살릴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그린벨트제도가 도입될 수 있는 계기로 보고 싶습니다.
- 그린벨트 지정 청원을 한 죽전리 일대가 지금은 아파트가 매우 많아 옛 모습을 짐작키 어렵습니다만, 과거에는 어떤 곳이었습니까.
▲김교선 = 아주 높은 산지도 아니고, 아주 낮은 평지도 아닌, 적당한 구릉과 평지가 뒤섞인 곳이었어요. 공기도 맑았지요.
바로 앞 탄천은 수량도 풍부하고 물고기도 많았어요. 한때는 인근 수원지역 땔감의 절반 가량을 이곳에서 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물고기도 거의 없고 공기도 엉망이 됐어요.
▲조명래 = 얼마전 내린 비로 용인에서 큰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언론에서는 난개발을 주요 원인으로 꼽았습니다만, 실제로 그런 것 같습니까.
▲김교선 = 당연하지요. 옛날에는 산에 빽빽히 들어선 나무가 빗물을 머금었기 때문에 물이 천천히, 적게 흘렀습니다.
하지만 아파트 건설을 위해 나무를 송두리째 베낸 바람에 이제는 빗물이 그대로 쏟아져 내려옵니다. 전에는 한시간 걸려 내려올 물이 이번에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아 흘러내려왔습니다.
- 그린벨트 지정을 청원한 뒤 주위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김교선 = 전국에서 격려 전화가 걸려왔어요. “큰 일 했다”고들 하니 우리도 뿌듯합니다. 주민들도 좋아합니다. 그린벨트로 묶이면 자연환경이 보전되니 싫어할 이유가 없지요.
▲조명래 = 땅을 내놓으면 적지않은 돈이 들어올텐데. 문중안에서 수용에 응하자는 사람은 없었습니까.
▲김교선 = 전혀 없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요. 하지만 대부분은 처음부터 내놓지 않기로 했지요. 그래서 그린벨트 지정을 함께 청원한 우리 문중과 금녕 김씨 문중, 그리고 개인 소유자 2명은 토지공사가 땅을 수용하고 그 보상비를 내놓더라도 절대로 받지 말자고 공증까지 했어요.
▲조명래 = 그린벨트 지정을 청원하기까지의 과정은 어땠습니까.
▲김교선 = 정부는 1998년 10월 이곳을 택지개발지구로 예정고시하고 99년 12월에는 계획고시했습니다.
부당하다며 국민고충처리위원회 등에 민원을 냈지만 “토지공사와 상의하라”는 회신만을 받았습니다. 정부가 우리의 절박한 문제를 외면해 서운했습니다.
토지공사는 “서민용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 택지개발지구로 지정했다고 하나, 요즘 이곳에 들어서는 아파트 가운데 70∼80평형대가 많은 것을 보면 서민을 위한다는 명분은 거짓말 같아요.
▲조명래 = 하지만 주택개발촉진법 등에 따르면 수용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습니다. 더구나 건설교통부는 ‘요건 미비’를 이유로 그린벨트 지정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고 하고 있거든요.
▲김교선 = 그래도 우리는 확고합니다. 우리 요구를 무시하고 강제수용하려 든다면 가만 있지 않을 겁니다. 조상이 물려준 땅이에요. 오죽했으면 재산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알고서도 그린벨트로 묶어달라고 하겠습니까.
땅은 함부로 뭉개고 파헤치는 게 아닙니다. 한번 파괴되면 영원히 되살릴 수 없어요. 잘 보전했다가 후손에게 물려주렵니다.
▲조명래 = 그렇습니다. 땅은 개발하고 이익만 내는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가 서둘러 개발해버리면 2세, 3세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가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을 시작한 그 때문입니다. 김회장님은 그린벨트 지정을 요청했지만, 우리는 도리어 그린벨트의 실패때문에 내셔널 트러스트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김교선 = 내셔널 트러스트라는 말이 아직 생소한데 정확히 어떤 운동입니까.
▲조명래 = 4년전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등으로 그린벨트시민연대를 구성하고 그린벨트 지키기 운동을 폈는데, 주민들이 그린벨트 해제를 원했기 때문에 효과를 거두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토지를 개인의 목적으로만 쓸 게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지속적으로 활용하자는 내셔널 트러스트에 눈을 돌린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올 1월25일 고은 시인과 김상원 변호사 등 2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사단법인 내셔널 트러스트운동이 출범했습니다. 저는 공동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지요.
▲김교선 = 그러면 내셔널 트러스트에서는 땅 매입비를 어떻게 마련합니까. 조명래 = 성금으로 충당하려 합니다.
또 땅 소유주로부터 기증도 받아야지요. 그렇게해서 취득한 땅은 개인 소유가 아니라 시민의 공동 재산이 되고 지금 세대뿐 아니라 미래 세대까지도 함께 쓸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김교선 = 좋은 취지를 갖고 있군요. 저는 내셔널 트러스트든, 우리처럼 그린벨트 지정 청원이든 땅을 지키는데 도움이 된다면 다 좋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린벨트나 내셔널 트러스트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우리 국토가 그만큼 많이 파괴됐기 때문 아닐까요.
땅은 개인 아닌 공동재산
마구잡이 개발 심각한 수준
용인 물난리도 '땅의 보복'
▲조명래 = 심각합니다. 집 도로 공장 등의 수요가 커지면서 최근 10여년간 마구잡이 개발이 이뤄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해마다 수백종의 생물이 사라졌고요. 그중에서도 결정적 요인은 준농림지라고 생각합니다.
준농림지는 도시 인근 농지와 산림지 가운데서 지정되는데 개발용지를 공급하는 게 주 목적입니다. 개발 허가권도 지자체가 갖고 있기때문에 쉽게 개발이 이뤄지죠. 국토의 26%가 준농림지이기 때문에 국토 파괴는 계속 이어질 수 있죠.
▲김교선 = 아무튼 이제는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땅 파헤치고 나무 자르는 일이 더 이상 없었으면 해요.
▲조명래 = 저희 내셔널 트러스트운동에서는 올 하반기 특별법 제정 운동을 펴려고 합니다.
내셔널 트러스트에 성금을 내면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되도록 할 생각입니다.
이 법이 마련되면 큰 효과가 있을 겁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더 이상 국토를 파괴시키지 않고 후손들에게 온전히 땅을 물려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 약력
■ 김교선(金敎善)
1930년 경기 용인시 수지읍 죽전리에서 태어났다.
농사일을 하면서 70년동안 고향을 지켜왔다.
올 1월 대지종회(大地宗會) 회장으로 선출됐으며 한국토지공사가 택지개발지구로 지정된 대지산 일대 문중 부동산을 수용하려하자 일절 응하지 않은채 그린벨트 지정 청원을 냈다.
■ 조명래(趙明來)
1954년 경북 안동시에서 태어났다.
단국대 법정대를 나왔으며 영국 서섹스대에서 박사 학위를 땄다.
전공은 도시 및 지역학. 현재 사단법인 내셔널트러스트운동 공동운영위원장으로 활동중이며 환경정의시민연대 운영위원, 문화개혁시민연대 공간환경위원장을 맡고있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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