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초원에 풀파도가 친다. 성하(盛夏)를 알리는 매미의 울음소리, 허공을 가르는 나비와 잠자리들, 그리고 포플러 나무들. 유년 시절의 삽화를 떠올리며 동요가 절로 나온다.충남 성환읍 어룡리 국립축산개량기술연구소의 광활한 초원. 하지만 유년의 기억으로부터 자유스럽지 못한 두 여자 강성연(24)과 김현주(22)가 초원에 서 있다. 콧노래를 부를 여유도 없다.
요즘 최고의 인기다. SBS 주말극 ‘덕이’. 어려웠던 1950~60년대 친자매가 아니지만 운명적인 만남으로 인해 쌍둥이로 지내며 유년을 수 놓았던 아역, 귀덕 역의 신지수(14)와 귀진 역의 이정윤(11). 29회로 유년시대를 마감하고 성인시대를 여는 타이틀 촬영장에서 두 아역은 두 성인 연기자, 강성연(귀진)과 김현주(귀덕)에게 부담으로 다가온다.
더 얄미워진 귀진
▥ 강성연
타이틀 촬영을 한 뒤 모니터를 응시하는 그녀의 눈은 빛났다. 지리한 기다림이 끝나서일까? 아역들의 예상 외 인기 때문에 한 달여 늦게 투입된 상황은 그녀에게 고통이었다.
그러나 기다리지만은 않았다. 대본과 악한 성격을 연기하는 어린 귀진이를 철저히 분석했다. 어린 귀진이의 대사를 외우고 있을 정도다.
“울면 안돼! 울면 지는거야!” 귀진이의 대사를 되뇌어보며 기자에게 자연스럽냐고 반문한다. 연기자에게 아역에서 성인역으로의 자연스러운 전환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1960~70년대는 미지(未知)의 시대다. 어머니의 이야기와 선배들의 냄새, 그리고 세트장의 분위기를 파악하는 길밖에 없다고 했다.
그녀가 마련한 하얀색 에나멜 구두와 분홍색 원피스가 이같은 연기 열정의 반증이다. 소도구까지 챙기는 모습은 데뷔 시절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스타성은 캐릭터를 통해 발현된다. 앞으로 계속 귀덕이의 사랑까지 가로채는 악의 화신으로 등장하지만 결코 개연성 없는 악의 분위기는 풍기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아역의 악 표출은 개연성도 없어도 시청자들이 관대하게 봐주지만 성인운 용납하지 않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도 약점은 있다. 카리스마가 너무 강하다. 그녀는 데뷔작인 ‘내가 사는 이유’에서 술집 작부 역을 능수능란하게, ‘카이스트’에선 중성적 이미지를 무리없이 소화했다.
물론 이번 귀진 역도 카리스마가 필요하다. 하지만 너무 강하면 과장이 된다. 귀진 역의 성공은 그녀가 잠재된 카리스마를 얼마나 자제하는가 여부에 달렸다. 그녀도 그 사실을 가슴에 새기고 있다고 했다.
연기력으로 승부를 거는 몇 안되는 젊은 연기자 중 한 사람인 강성연. 그녀를 만난 21일은 그녀의 스물네번째 생일이었다.
더 착해진 귀덕
▥ 김현주
그녀는 마냥 좋은 듯하다. 초원을 거니는 발걸음이 가볍다.
강성연이 땀 흘리며 타이틀을 모니터하는 동안 그녀는 동료 연기자들과 재잘거린다. 하지만 그녀에게 이번 귀덕 역의 소화 여부가 연기자로서 중요한 전환점이다.
김현주에게 연기 잘 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단지 그녀의 외모와 이미지가 귀엽다는 것을 빼놓고는 칭찬하지 않는다.
김현주 역시 어린 귀덕이의 출중한 연기가 부담스럽다고 했다. 다면적인 양태와 성격을 표출할 수 있는 악한 캐릭터는 차라리 연기가 편하다.
그러나 내면적이고 단선적인 착한 캐릭터, 귀진 역은 고도의 연기력이 필요하다. 그녀는 짧은 연기생활에 평면적인 연기가 더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자신에게 이번 귀덕 역이 가장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귀덕이라는 캐릭터와 자신의 성격이 차이가 있다는 김현주. 화 나면 화 내고 싫으면 싫다고 하는 체질이라고 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참는 귀덕이 스타일은 싫다고 했다. 그녀는 솔직하다. 그 솔직함이 길거리에서 캐스팅돼 현재의 입지를 굳히는 원동력이었다.
처음 대사가 안 돼 출연했던 프로그램에서 쫓겨난 뒤 볼펜을 물고 숱한 날 책을 읽었다는 김현주. 그러나 최근 영화나 드라마에선 연기력의 향상이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열심히 한다고 했다. 여기에서 김현주의 최대의 약점인 끼의 부족이 드러난다. 많은 사람이 연예인이 될 수 있지만 스타로 부상하는 데는 끼가 절대적이다.
하지만 그녀는 귀엽다. 김현주가 그녀의 외모와 분위기를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캐릭터를 맡는다면 진정으로 초원을 가벼운 마음으로 뛰어다닐 수 있을 것같다.
배국남기자
knb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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