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렝게티 국립공원으로 향하는 길에서 망아지를 끌고 길을 가는 마사이족 엄마와 딸을 만났다.얼굴을 흰색 무늬로 장식한 마사이족 사냥꾼 셋도 만났다. 순간의 만남, 아무런 감정조차 주고 받지 못한 만남이다.
서로가 나누는 주저함과 두려움의 시선들…. 촬영하는 순간이나마 나는 그것을 잊는다. 어색한 만남일지라도 착실한 사진으로 남아 다른 문화 속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지구상의 마지막 동물의 낙원이라는 세렝게티 국립공원. 솔직히 말하자면 15년 동안 꿈꾸어 온 곳이다.
덜컹거리는 차에 몸을 의지하고 6시간을 달렸다. 세상의 모든 먼지를 마신 느낌이지만 꿈이 이루어진다는 흥분에 몸은 가벼웠다.
세렝게키는 마사이족의 말로 '끝이 없는 평원'. 사방을 둘러보아도 시야의 끝은 지평선이다.
그러나 15년의 꿈을 이루기 위해 도착한 겨울의 평원은 결코 파라다이스처럼 보이지 않았다. 갈색과 회색, 하늘의 파란색…. 아프리카의 겨울 색깔은 황량했다.
더욱 걱정인 것은 동물들이 없다는 것이다. 톰슨 가젤을 제외하고 다른 동물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모두들 케냐로 대이동을 해버렸다. 사람도 떠났다. 나처럼 때늦은 황량함에 젖으려는 유럽인 관광객 수십 명만을 남겨놓고 그러나 어딘가에 있을 꿈을 찾아 나서보아야 한다.
이 황폐한 대지 위에 비록 하나의 점일지라도 그토록 그리던 진실이 있을 것이다.
세렝게티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었다. 예상했던 대로 남아있는 동물들이 있었다.
치타 한마리가 외롭게 바위 위에서 사위를 둘러본다. 유난히 털이 흰 예쁜 암컷이다.
15마리 정도의 사자 가족, 역시 15마리쯤 되는 코끼리 가족, 그리고 을씨년스런 겨울 나무의 모습. 4시간 정도의 촬영으로 마음에 드는 사진 4컷을 얻었다. 첫 날 아침치고는 괜찮은 성적이다.
오후도 좋았다. 나뭇가지 위에서 긴 잠을 자는 표범과 사자를 보았다. 콧바람 소리를 내며 숙소로 돌아왔다. 피곤함도 잊은 채 먼지 투성이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역설적으로 이 곳은 겨울이 오히려 좋다는 생각을 해봤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작은 생물체 하나라도 소중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생각마저도 자기 위안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며칠이 걸리지 않았다.
둘째, 셋째 날은 거의 동물을 구경할 수 없었다. 국립공원 지역의 끝에서 끝까지 돌아다녀도 목마른 코끼리와 사슴 몇마리만 만났을 뿐이다.
하루 종일 셔터를 누르며 양은 메우지만 뭔가 빠져있는 느낌이었다. 아프리카의 겨울 풍광은 맛이 있지만 그 속을 살아가는 생명의 모습은 안쓰럽다.
'이 겨울에 나는 무엇을 찾고 있는가. 사람도 동물도 모두 떠나버린 이 곳에서'. 동물들을 따라서 케냐로 넘어가야 하는가. 문제가 심각하다.
사실 세렝게티희 생활은 편치 않았다. 숙소부터 그랬다. 계속 3류 로지에서 보내고 있다.
이전의 여행지에서는 그런대로 넘어갔지만 세렝게티에서 만큼은 참을 수 없다. 언제 사용할지도 모르면서 조금 나은 숙소를 신청해 놓았다. 물론 현지에서 방을 바꾸면 많은 돈이 든다. 사파리를 안내하는 인도인의 상술이 엿보인다.
장비도 걱정이다. 먼지 때문에 하루에 두 번씩은 닦아줘야 하는데 결국 탈이 났다. 카메라 두 대가 작동이 안 된다. 다행히 아직 두 대가 남아있고, 서울에서 긴급 공수해온 80~200mm렌즈도 제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다.
아내가 벌레에 열 군데나 물렸다. 나도 이마에 한 곳, 발에 일곱 곳을 물렸다.
아내의 상처 하나가 모기에게 열번은 물린 것처럼 커다랗게 부풀어 올랐다. 동물도 색깔도 없는 아프리카의 한 가운데에서 갑자기 겨울을 타는 느낌이다.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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