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법 개정안 날치기 처리 파동의 근저에는 4·13총선 후 형성된 여야구도를 유지하려는 김대중 대통령과 이 구도의 타파를 꾀하는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 그리고 양자 사이에서 정치적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 3자 간의 물고 물리는 정치적 이해관계가 깔려 있다.여기에는 차기 대권구도를 염두에 둔 3자의 파워게임도 작용하고 있다.
집권 민주당으로선 자민련과의 공조복원을 통한 국회의 안정적 운영구도가 최근 위기에 봉착한 것이 강경 대응의 도화선이었다.
마치 협공을 하듯 한나라당과 자민련의 최근 움직임에 위기를 느낀 것이다. 민주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상생의 정치를 한다고는 하지만 국회 운영에 대한 한나라당의 협조에는 한계가 있음이 2개월여 간의 경험에서 드러났다”면서 “또 교섭단체 구성을 바라는 자민련의 압박은 국회 표결 불참을 선언하는 등 최근 최고조에 달했다”고 말했다.
이총재와 JP의 회동이 있기 직전 자민련측에서 비공식적으로 “JP를 잡지 않으면 2002년 대선은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얘기까지 했다고 한다. 민주당으로선 자민련을 붙잡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반면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총선 후 자민련 고사작전을 폈던 것이 여권으로하여금 ‘비(非)한나라연대’를 가능케 했고 국회 표대결에서 번번이 패하자
JP포용정책으로 전환하는 등 변신을 꾀하기 시작했다. 22일 JP와의 골프장회동은 그 일환이었다. 그는 JP와의 회동에 이어 총선 당시 한나라당 이탈세력과도 화합을 꾀하는 등 대권주자로서의 적극적인 ‘이미지 메이킹’을 시도중이다.
이총재의 이같은 대시는 민주당이 ‘밀약설’을 앞세워 국회법 개정안 강행 처리를 밀어붙이는 빌미가 됐다. 다만 대권을 의식한 이총재의 구상이 자민련의 교섭단체 구성을 용인 또는 협조하는 수준까지 나아간 것은 아니어서 자민련과의 갈등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원내 17석의 자민련에 있어선 판의 변화는 생존권이 걸린 문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JP는 민주당 또는 한나라당을 선택적으로 또는 모두 압박하는 수단으로 ‘대권’을 언급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별로 없다.
스스로 대권 창출 능력은 없지만 자민련은 캐스팅보트를 행사할 수 있는 지역적 기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서 3개 세력의 미묘한 역학관계가 원내 교섭단체 구성요건 완화를 위한 국회법 개정안 처리를 둘러싸고 16대 국회 최초의 물리적 충돌로 발전한 것이다.
그러나 차기 대권을 의식한 각 정파의 암중모색의 일단을 미리 훔쳐본 듯한 이같은 대립구도가 반드시 고착화할 것으로 보는 것은 맞지 않을 수 있다. 정치는 ‘생물(生物)’이기 때문이다.
고태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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