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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기행] (35)김혜순 시집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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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기행] (35)김혜순 시집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

입력
2000.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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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 우파니샤드아침 일고여덟시경/ 나는 생각한다/ 서울에서 지금/ 일천이백만 개의 숟가락이 밥을 푸고 있겠구나/…/ 시끄러운 아스팔트 옆/ 저 늙은 나무엔 일천이백만 개의 손잡이가 달린 이파리들이 달렸다

하늘이 빛의 발을 서울의 동서남북/ 환하게 내다 걸면 태양이 일천이백만 쌍/ 우리들 눈 속으로 떠오른다…/ 바람이 내안으로 들어왔다 그대안으로/ 들어가고, 다시 그대 숨이 내 숨으로/ 들어오면 머리 위에서 신나는 풀들이/ 파랗게 또는 새까맣게 일어선다 오오

한밤중 서울의 일천이백만 개의 무덤은 인중 아래/ 모두 봉긋하고 오오오/ 또 한강은 일천이백만 개의 썩은 무덤 속을 헤엄쳐 나온/ 일천이백만 드럼의 정액을 싣고 조용히 내일로 떠난다/ 다시 하늘이 빛의 발을 서울의 동서남북 내다걸면/ 일천이백만 쌍의 태양이 눈을 번쩍 뜨고/ 저 내장들의 땅속 지하 삼천미터 속까지/ 빛살무늬 거룩하게 새겨진다 (시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에서)

우파니샤드. 기원전 3세기에 만들어진 힌두교 성전이다. 우주적 실체와 인간내면의 자아와의 궁극적 일치를 주장한다.

“내가 읽어야 할 것 여기(서울)에 있잖아요. 성전에는 아름다움만 있지 않아요. 신이 있지만 그 아래 사람들은 끝없이 잘못을 저지르고, 의문투성이의 일상을 살잖아요. 혼란스러움이 내 내면과 같아요.”

서울은 영원히 개발도상중, 근교까지 집들로 이어진 가장 복잡한 세계 최대의 도시다.

‘깨어진 유리병 속에서/ 꽃이 꽉차게/ 자라났습니다/ 꽃이 더 이상 머리를 둘 곳이 없게되자 이번에는 유리병이 쑥쑥 자라나주었고’(시 ‘서울의 흥부’에서), ‘포장도 안뜯은 새 건물이 제본소에서 마악 도착한 신간 소설책 뭉치처럼 부러지고 있다’(시 ‘서울길’에서).

“자기 언어로 자신의 존재를 앙앙거리는 게 문학이라면 그 자리를 여기(서울)라고 말하고 싶어요. 여행을 갔다 돌아오면 서울이 아늑한 고향같잖아요. 다 욕하면서도 돌아오잖아요. 삶의 터전이기 때문이죠. 그곳을 떠난 시인의 말은 동의할 수 없어요.”

#2 시인의 아파트

“한달 전 이곳(서울 동소문동 아파트 13층)으로 이사왔어요. 베란다 유리문 밖으로 미로 같은 서울이 내려다 보여요. 아파트 안에서 보는 풍경은 아름다운데 자신은 흉물이에요. 그랜드 캐년 같아요. 깎아지른 건물과 그 사이의 미로같은 좁은 길.”

‘지금 막 도착한 저 빌딩의 몸 속을 좀들어다보세요 층계와 층계 사이로 불켠 실핏줄들이 보이잖아요? 서울이 서울을 낳아요 마음이 제 몸을 한껏 부풀려 또 마음을 낳아요 거기로 이삿짐을 가득 실은 차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또 실핏줄이 엉겨붙어요 샛길이 나요 발을 디뎌보지도 않았는데 또 길이 나요 언제 저길을 다 뒤져 당신을 찾아내지요 당신이 보고 싶어요’(시 ‘서울길’에서).

“왜 이렇게 어려운 사람을 선택했어요? 나보고 모두 어렵다고 해요. 무슨 소리인지 모른다고 해요. 지난 시들을 보면 지금의 내가 쓴 것이 아니기에 남이 쓴 것 같아요. 나도 잘 몰라요.”

에피소드 하나. 김수영문학상 심사위원이었던 시인 신경림씨는 수상 시집인 ‘불쌍한 사랑기계’를 읽었다. 너무 어려워 도움을 받으려고 시집 뒤에 실은 정과리의 해설을 읽었는데 “그게 더 어렵더라”는 것이다.

평론가 성민엽은 욕망을 담은 몸의 시학과 역동적인 에로스로, 정과리는 망가진 이중나선으로 김혜순 시들을 분석했다.

송수권은 그녀의 상상력은 내면의 극기와 풍경으로 이뤄지고, 외상과 내상이 한 이미지군으로 구성돼 정신적 틀을 형성한다고 보았다. 김승희는 그녀의 특성을 자유분방한 언어와 상상력의 속도감이라고 말했다.

다양한 해석만큼 그의 시는 낮설고, 경치와 맞닥뜨릴 때 감흥을 중시하는 전통시 작법과 다르다. 풍경의 사유화(私有化), 시선의 폭력을 거부하고 마치 스며드는 물처럼 풍경과 시인이 경계를 허문다.

시 ‘참 오래된 호텔’처럼 마치 꿈꾸듯, 시내림을 받은 듯 외면풍경과 내면의 목소리와 다른 것들이 동시다발로 나온다.

그래서 풍경과 자신은 살아서 서로의 속으로 들락날락하고, 그것으로 나와 너는 서로 생동한다. 그 속에서 길찾기.

#3 황학동, 남산, 그리고 지하철

황학동 벼룩시장으로 갔다. 모든 것이 헌 것이고 새 것인, 마치 죽었다 살아나는 윤회거리와도 같은 곳. 10년 전 그곳에서 시인은 땡볕 아래 혼자 앉아서 구두를 고치는 신기료할아버지를 발견했다.

‘행려병자의 시신이었나 해부하고 나니 국물밖에 없네. 십년 지난 모터도 심장을 떼어내 핏빛 페인트 국물에 첨벙 담갔다 꺼낸다.

수건 쓴 아줌마가 귀를 붙이고, 분가루를 뒤집어 쓰면 부처가 손끝을 말아쥐고, 그들의 육담에 부끄러운듯 두발로 아랫도리를 가린다’(시 ‘황학동 벼룩시장’에서).

그의 시선이 스며든 서울의 풍경들은 이처럼 하나의 경이로움이 되고, 때론 유희도 되고, 공포도 되고, 문명비판도 된다. 낯을 익히면 그 것들은 꿈을 꾸듯, 그 꿈속에서 꿈을 이야기하듯 우리 몸 속에도 살아 들어온다.

교통체증으로 차들이 밀린 ‘비오는 날, 남산 1호터널 들어가는 길’을 남산에서 내려다 보며 그녀는 ‘메추리 굽는 냄새가 공중에 떠오르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진다/ 메추리 살이 빗방울과 함께/ 아스팔트 위에 새까맣게 탄다/ 앰뷸런스는 목이 쉬도록 소리치면서도/ 길이 막혀 빨리 죽음에 닿지도 못하는지/ …/ 아직도 도망가지 못하는 너에게/ 창밖에서 배웅하는 내가 우산 밖으로 손을 내밀고 싶다’고 한다. 의사소통의 안타까운 우리의 모습은 냄새조차 추락하고 그것이 살이 돼 타버리는 메추리가 되고, ‘탁자 중간에서 헤엄을 멈추는 붕어 두마리가 된다(‘블라인드 처진 방2’ 요약).

쥐떼들이다. ‘고양이처럼 나를 쫓는 서울에/ 오늘밤 지하 동대문 역을 물밀어 나가는 우리들/ 누군가 피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시‘The Rat Race’에서), 아니면 ‘털난 다리가 들어와 발톱으로 눈과 귀가 찢기는 어미, 아침이 되자 지난밤 공포로 수상한 냄새를 풍기는 우리를 물어 죽여선 내장도 먹고 눈알도 파먹는 어미 쥐’(시 ‘서울 쥐의 보수주의’요약)이다.

전동차 안에서 그들의 삼천개 심장이 뛰는 따스한 소리를 들은 김혜순은 기도한다. ‘저 검은 털 아래/ 저 하찮은 에드윈, 언더우드 아래/ 저 붉은 심장들이/ 숨어서 뛴다/오우 하나님 보시옵소서/ 따뜻한 속꽃 삼천 송이로 지은 심장 만다라/ 지금 한강 노을속에 잠시/ 떴나이다(시 ‘불쌍히 여기소서’)

이대현기자

leedh@hk.co.kr

■김혜순 작품세계

"시는 내 안의 어머니르 찾는 일"

김혜순의 시는 물의 이미지로 가득하다. 비, 강물, 샘물, 수면, 어항, 얼음, 눈물, 눈, 심해, 물감통, 욕조, 파도….

왜 ‘물’인가? 여성을 상징하기 때문일까. 김혜순은 봄부터 계간 ‘문학동네’에서 그 이유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연인, 환자, 시인, 그리고 너’란 글은 몸, 물, 여성의 병(히스테리)과 여성성으로 상징되는 어머니에 대한 새로운 정의, 그리고 자신이 가진 여성적 글쓰기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생물에게 생명을 주면서, 스스로 움직여 멀어져가는 것이 물이다. 그러나 물은 길이 아니라 물 그 자체다.

물은 흘러가면서 생명들 속에 깃들이지만, 그 생명들을 자기 것이라 하지 않는다. 물은 마치 어머니처럼 흘러들지만 스스로는 그 생명으로부터 더 낮은 곳으로 떠난다.

물은 스스로 사라짐으로써 뭇 생명에게 생명을 준다. 물은 실체가 있지만 스스로 형태가 없다. 물은 모든 생명 안에서 어머니의 존재방식 그대로 존재한다.”

그는 노장사상으로 그 물을 해석한다. “물은 도(道)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같지만, 모든 생물 속에 편재한다.

그 모습은 어떠할까. 마치 ‘흘러가는, 지나가는, 멀리 돌아가는, 되돌아가는, 스며드는, 끈적이는’ 처럼 여성의 몸을 비하해서 표현하는 언어들을 그대로 써야 할 것이다.

여성 시인은 물의 언술, 타자화되고 폄하되어 왔던 물의 언술을 통해 오히려 타자를 살려낼 수 있다. 물의 언술은 여성 시인들에게 또 다른 부재의 존재 방식을 현시한다.”

한 (여성)시인이 게속해서 시를 쓴다는 것은 자기 안의 어머니를 발견해 나가는 길 위에 계속 머물러 있는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시는 자기 안의 어머니를 찾아가는 기나긴 도정 안에서 쏟아지는 말이다. 시의 내밀성은 내 안의 어머니가 어머니되기를 실현해가는 길 위에서 저절로 생성된다.

여성 시인이 시를 쓸 때 , 그녀는 스스로 어머니이다. 그녀는 어머니 되기를 실현해야 하는 어머니이며, 버려지고 상처받은 여자아이로서 자기 안의 어머니를 발견해야 하는 어머니이다.”

물처럼 스며들려고 하니 경계가 사라지고, 그의 시에서 풍경은 살아서 몸과 상상의 공간을 자유로이 드나든다.

공(空)의 무한한 파도를 타고 마음이 흘러들어가는 것, 그것이 곧 시의 이미지이다. 그러기에 내(김혜순) 안의 어머니는 자신과 자신 밖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이미지로 만드는 시적 기제이다.

그 이미지들로 김혜순은 마음의 참혹한 풍경화에 폭풍처럼 구멍의 길을 낼 언술을 꿈꾼다. 모두들 그 언술을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절래절래 젖더라도.

▥ 연보

▲1955년 경북 울진 출생 ▲건국대 및 동대학원 국문과 졸업 ▲1979년 계간 ‘문학과 지성’에 ‘담배 피우는 시체’ 등을 발표하면서 등단 ▲시집 ‘또 다른 별에서’ ‘아버지가 세운 허수아비’ ‘어느 별의 지옥’ ‘우리들의 음화’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현대시 작품상) ‘불쌍한 사랑기계’(소월시 문학상) ‘달력 공장 공장장님 보세요’ ▲서울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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