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정치는 더 이상 정치가 아니다. 국민과 괴리된 그들만의 정치일 뿐이다. 그 대표적 사례가 국회법 개정안 운영위 날치기 처리와 그뒤 일어나고 있는 여야간의 팽팽한 대치다. 여당은 무엇 때문에 국민이 싫어하는 법을 어거지로 통과시키려 하고, 야당은 또 무엇 때문에 본회의장에서 철야농성의 추태를 벌이고 있는가. 이 바람에 멍드는 것은 민생뿐이다.현행법상 원내교섭단체의 구성요건에 미달하는 의석 17석을 얻은 것은 전적으로 자민련의 책임이다. 자민련은 그럼에도 그 책임을 현행 국회법에 돌리고 있다.
전체의석이 줄었으니까 교섭단체 구성요건도 줄여야 한다, 군사정권이 늘린 것이니까 원래대로 줄여야 한다는 등 되지도 않는 논리를 동원하고, 그것도 안되니까 공조를 볼모로 민주당을 물고 늘어졌다. 비(非)한나라 연대를 통해 정국주도권을 쥐어야 하는 여당의 입장에서 자민련의 몽니를 언제까지 모른 척할 형편이 아닌 것쯤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자민련이 교섭단체가 못된다고 해서 소속 의원들이 의정활동에 지장을 받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정당보조금이 줄어들고 정당으로서 체면이 좀 깎인다는 것뿐이다. 이런 연유로 자민련이 중시하는 것은 자민련 오너인 JP의 체면과 위상이 아닌가 생각된다.
말하자면 이번 국회법 개정안은 한 사람의 체면을 위한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정권의 변천과 무관하게 오랜 기간 권력의 상층부에 온존해 온 한 사람의 정치지도자를 위해, 새시대 새정치를 부르짖는 16대 국회가 초반부터 이렇게 난장판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에서 철야농성에 들어간 시각, JP와 이한동 국무총리 등 자민련 핵심당직자들은 음식점에 모여앉아 국회법 개정안의 운영위 통과를 자축하며 폭탄주를 돌렸다고 전해진다. 날치기 이면에 창(昌)-JP간 합의가 있었다는 이른바 ‘밀약설’ 논란도 의아스러운 대목이다. 이런 것이 희화화해 가고 있는 우리 정치의 한 단면이 아닌가 생각된다.
국민들은 당초부터 국회법을 손질하는 것을 싫어했다. 모든 여론조사 결과가 이를 입증한다. 국민이 싫어하는 법을 굳이 고칠 이유는 없다. 더구나 과거와 달리 지금은 국민들이 날치기 처리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IMF 터널을 지내 오면서, 또 디지털 세상의 변화를 체감하면서 정치를 보는 국민의 눈은 많이 달라졌다.
지금이라도 늦지는 않았다. 대치정국을 해소, 국회가 진정 민생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여야는 다른 방도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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