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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시지프스의 지옥'

입력
2000.07.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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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나는 나’라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세계’ 속에서 문학은 존재한다.” 최근 평론집을 낸 한 젊은 비평가는 문학의 의미를 요즘 유행하는 광고 카피에 빗대 이렇게 말했다.문학은 '나는 나'아닌 '나는 우리' 지향

억압없는 세상 꿈꾸는 작가의식 선명

‘나는 나’는 ‘나는 있다’는 것을 상정하고, ‘나는 있다’는 ‘나는 없다’로 필연적으로 진행되며, 이것은 죽음의 세계라는 것이다. 문학은 그 죽음에 저항하며 ‘나는 나’가 아닌 ‘나는 우리’의 세계를 그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설가 박상우(42)씨는 이런 ‘나는 나’의 개인들이 모여 있는 우리의 현실 그 자체를 종말적 상황으로 파악한다.

그가 5년 만에 펴낸 중단편집 ‘사탄의 마을에 내리는 비’(문학동네 발행)는 이 종말의 징후로 가득하다. 제목처럼 어둡고 음습하고 절망적이다.

표제작은 종말에 관한 박씨의 작가의식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소설이다. 음습한 비 내리는 카페에 젊은이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그들에게는 이름이 없다. 은빛 귀고리, 보랏빛 립스틱 등 몸에 치장한 표식으로 불릴 뿐이다. 그들은 한편으로는 자신을 드러내고 싶고 한편으로는 위장하고픈 이중적 욕망에 길들여져 있다.

같은 술자리에 합석한 그들은 귀청을 찢을듯한 음악 소리에 대화를 나누지는 못하고 자신의 의사만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필담을 나눈다.

그러면서 남녀는 스스럼없이 서로의 육체를 탐한다.

이때 X라는 남자가 나타나 그들을 한 장소로 인도한다. “저주받은 영혼이 안식할 수 있는 지하묘지, 구원을 포기한 영혼이 안주할 수 있는 카타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라며. 이들은 카타콤으로 몰려가고, 거기서 한 여자는 자살한다. 그녀는 카페에 오기 직전 낙태수술을 한 참이었다.

왜 종말일까. ‘사탄의 마을에…’에서는 박씨는 어디서도 그 실제적인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컬트영화처럼 그려보여줄 뿐이다.

이유는 그의 다른 작품들에서 찾아진다. “인간의 운명을 극복하려는 반항적인 분투가 사라지고, 이제 지상에는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인간의 멸시가 범람하고 있을 뿐이었다.

어느 누구도 희망 없는 노동을 투자하여 산정으로 올라가지 않으려 하고… 지상에 안주하기 위해 인간의 숙명까지 부정하는 가련한 시지프들의 지옥… 그곳에 안주하며 하루하루 종말적인 인간의 시간을 살아온 것이었다.”(‘내 마음의 옥탑방’에서).

인간의 가치가 수치로만 환산되는 자본주의 사회, 그 가치로만 따져 매일 자신의 자존에 상처를 입으면서도 동시에 타인의 인간적 가치를 억압하며 살아가는 ‘나는 나’들, 그들이 안주해 꾸려가는 일상적 삶이먀말로 시지프들의 지옥이고 곧 종말이라는 것이 박씨의 전언이다.

‘말무리 반도’ 같이 아름다운 여로(旅路)소설도 포함돼 있고, 낭만적인 그의 문체도 변함은 없지만 이번 소설집은 여러 면에서 박씨의 이전 소설과 달라 보인다. 이같은 광기의 사회에 대한 비판 때문이다.

그 비판을 소설화하려는 고투가 읽힌다.

박씨는 “소설집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이후 십 년, 그동안 내가 세상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소설로 묶은 것이다. 그것이 ‘사탄의 마을’이 될 줄은 나도 몰랐다. ”고 말했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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