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시장에 ‘경보령’이 내려졌다. 주식시장은 금융불안감 확산에 따른 매물홍수로 믿었던 둑(지지선)들이 차례로 무너지는 등 주가폭락세가 위험수위에 육박하고 있는 양상이다.채권시장도 일부 우량기업을 제외하고는 회사채 발행이 사실상 중단되는 등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난기류에 휘말리고 있다. 금융전문가들은 정부당국의 땜질식 처방과 무대책에서 비롯된 ‘금융 인재(人災)’라고 지적하고 있다.
태풍이 몰려온다
자금시장은 온통 먹구름으로 뒤덮이고 있다. 당장 주식시장은 24일 주가폭락사태를 겪으면서 증권시장 위기론이 다시 고개를 드는 분위기다. 주식시장의 몰락은 수급불안정이 근본적인 원인. 신규자금 유입도 주도세력도 없는 상태다.
정부의 백화점식 자금시장 안정대책과 유례없는 저금리에도 불구하고 주식시장에는 새돈이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유일한 매수세력이었던 외국인투자자들마저 반도체 경기 논쟁에 대한 우려로 발을 빼기 시작하면서 주가폭락의 단초를 제공했다.
7월 유동성장세를 이끌 것으로 기대했던 투신권에는 또 하나의 태풍이 몰려오고 있다. 투신업계에 따르면 후순위담보채(CBO)펀드와 하이일드 펀드가 안고 있는 13조원에 이르는 투기등급 채권의 만기가 속속 돌아온다. 투신사들은 이들 펀드에 대한 환매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주식을 지속적으로 내다팔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있다.
여기에 경기가 이미 하강국면으로 들어섰다는 경고가 잇따르면서 경기논쟁이 재연되고 있는데다 동남아발 통화불안의 우려감도 갈수록 증폭, 투자심리를 더욱 꽁꽁 얼어붙게 하고 있다.
기업의 자금조달 창구역할을 해야 할 채권시장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 대신증권 채권팀 관계자는 “B급 회사채의 경우 발행이나 거래가 거의 끊긴 상태”며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기업의 부도도미노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예고된 인재
전문가들은 이같은 금융불안에 대해 정부의 정책 실패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장인환(張寅煥) KTB자산운용 사장은 “주가하락은 정부의 구조조정과 자금시장 안정대책에 대한 시장의 불신이 반영된 결과”라고 말했다.
실제로 당초 10조원 규모로 조성키로 했던 채권전용펀드 설정액은 3조원 정도에 그치는 등 지지부진한 모습이다. 그나마 펀드조성에 나서야 할 보험사들이 출연거부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다 펀드에 참가한 은행들은 회사채 매입을 꺼리면서 국공채투자에만 열을 올리는 파행이 이어지고 있는데도 금융당국은 방관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특히 투신권의 비과세펀드 신설을 통한 시중자금 유입 기대감에도 불구하고 농특세 부과 논란과 국회의 심의지연 등으로 정책 실행을 늦추면서 주가하락을 부채질했다.
기업 및 금융구조조정에 대한 지연도 투자자들의 실망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외국계 증권사 한 관계자는 “외국투자자들이 금융파업과 이에 대한 정부의 대응자세를 보면서 ‘한국은 역시 한국이다(Korea is still Korea)’라는 인식이 깊어졌다”고 전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정문건 상무는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약속했던 자금시장 안정대책을 빨리 시행하고 신속하게 금융구조조정의 방향을 제시하는 한편 공적자금을 어떻게 조성할지 여부도 시장에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병주기자
b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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