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의 보충수업 금지방침에도 불구, 전국의 상당수 고등학교가 이번 여름방학에 특기·적성교육이라는 명목으로 편법 보충수업을 계획해 놓고 있다. 그러나 정작 교육부와 일선 교육청들은 이를 묵인하는 실정.이 때문에 불안해진 보충수업 미실시 학교 학생과 학부모들이 학교측에 강력히 항의하고 나서는 등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교육행정으로 인해 교육현장에서 심각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 실태
대구 K고교는 1·2학년생 학부모 전원으로부터 26일부터 실시하는 특기·적성교육에 참여하겠다는 동의서와 수업비 5만원씩을 이미 받아놓았다. 그러나 실제 교육내용은 국어 영어 수학 등 주요 과목으로 정규수업의 연장이다.
서울 J고, 전북 C고, 경기 P고 등도 같은 방식의 방학중 보충수업을 준비하고 있다. 대개 하루 4시간씩 20~25일에 걸쳐 80~100시간 강의를 계획해 놓고 있다.
특히 서울보다는 아무래도 당국의 ‘감독’이 느슨한 지방 학교들이 더 적극적이다. 경북 P고의 이모(33)교사는 “이번 방학에 보충수업을 하는 학교가 워낙 많아 서로 쉬쉬하지도 않을 정도”라며 “우리 지역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대부분 다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보충수업과 관련한 교육부의 방침은 현재 3학년의 경우는 희망자에 한해 제한적으로 허용하되 새로운 대입제도가 적용되는 1·2학년은 전면 금지한다는 것. 그러나 일선고교들은 방학중 ‘학교장 재량’으로 영어회화반·수학탐구반·국어작문반 등의 특별활동반 운영이 가능하다는 점을 교묘하게 이용, 보충수업의 ‘근거’로 삼고 있다.
◆ 학생·학부모 반응
대구 Y고 2학년 김모(17)군은 “찜통교실에서 강제로 실시하는 보충수업으로 인해 방학계획이 모두 헝클어졌다”고 말했고, 전북 I여고 2학년 권모(17)양은 “적성이 중요하다고 역설하더니 주요 과목에 대한 강제 집중교육이냐”며 어이없다는 반응. 물론 경북 K여고 2학년 최모(16)양처럼 “무슨 수를 쓰더라도 성적을 올리는 게 최선아니냐”고 당연시하는 반응도 있다.
반면 보충수업을 하지 않는 학교의 학부모들은 “우리 애들만 불이익을 당한다”며 불안해 하고 있다. 강모(44·경기 부천시 심곡동)씨는 “하려면 다하든지 해야지, 일부 학교만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교육현장에서도 원칙을 지키는 쪽이 손해를 봐야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항변했다.
◆ 교육당국은 뭘하나
사정이 이런데도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측은 “특기와 적성을 중시하는 열린 교육의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 보충수업을 하다 적발되면 즉시 중지시키고 행정조치를 취하겠다”는 원칙론만 되풀이하고 있다.
심지어 전국 각 교육청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학기 및 방학기간 중의 보충수업 실태를 고발하는 글이 연일 쇄도하고 있는데도 교육당국은 “현재로는 계획중인 학교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하고 있다.
전교조 이경희(李京喜)대변인은 “학교교육을 파행으로 이끄는 보충수업이 이번 여름방학을 고비로 전국적으로 고개를 들고 있어 최근에 대책회의를 가졌다”면서 “빌미를 제공하는 방학기간 특기적성교육 프로그램 자체를 아예 없애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강 훈기자
hoon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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