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란동굴에서 나오니 배고픔보다 목마름이 더 큰 고통이었어요. 바닷물로 갈증을 풀 수 없다는 것을 그 때 알았습니다. 미군들이 수돗물을 갖다주었지만 아무도 마시지 않았습니다.귀축미영(鬼畜美英)의 군대가 독을 푼 물인 줄 안거지요. 그랬더니 미군병사들이 웃는 얼굴로 그 물을 마시면서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이는 겁니다. 그래서 물을 마시고 갈증을 풀었지만, 끝까지 믿지 못한 사람들은 수류탄을 터뜨려 자폭하고 말았습니다.”
■태평양전쟁 말기 해안동굴에서 피란생활을 한 오키나와 주민에게서 들은 말이다. 오키나와 평화기원자료관에서 일하던 자원봉사자 할머니는 그 때 미군이 귀신도 짐승도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비로소 군국주의 프로파간다에 속은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남지 않은 초토의 땅에서 점령군은 그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었고, 나중에는 기지공사를 벌여 일자리를 제공했다. 미국에 대한 은원(恩怨)의 감정이 복잡하게 얽힌 배경이다.
■일본영토 중 유일하게 지상전이 벌어진 오키나와 전투 희생자는 20만명이 넘었다. 그 가운데 60%가 넘는 12만2,228명이 현지주민이었다. 집집마다 한 사람씩 죽은 셈이다. 그래서 주일미군 병사들의 범죄, 특히 성범죄에 대한 반응은 민감할 수밖에 없다.
얼마 전 미군의 여학생 성추행 사건이 일어나자 현지 미군사령관은 즉각 공식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그래도 가라앉지 않은 민심은 세계의 NGO 단체를 불러들여 응원을 청하고 있다.
■21일 개막하는 오키나와 서미트(G_8 정상회담)를 겨냥해 주민들과 NGO 회원들은 회담장과 미군기지를 둘러싸고 철수 요구 시위를 벌이고 있다. 같은 날 서울에서는 대니얼 패트로스키 미8군 사령관이 서울시장을 방문해 독극물 방류사건을 사과했다.
미군이 한국에 주둔한 이래 사과는 처음이라지만 그 정도로 끝날 일은 아닌 듯하다. 지금 한국인들은 우리에게 미군은 무엇인지를 심각하게 묻고 있다.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준 군대의 이미지를 회복하자면 무엇부터 바로잡아야 하는지 미국은 모르지 않을 것이다.
/문창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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