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이산가족 방문자 명단발표와 신원확인 과정에서 월북자를 둔 이산가족들이 연좌제로 인해 받은 각종 감시와 사찰, 차별, 불이익 사례가 구체적으로 드러났다.이들은 부모·형제가 의용군으로 끌려갔거나 이념문제로 월북했다는 이유만으로 공직진출과 해외취업, 거주이전에 제한을 받고 상시적인 사찰과 감시를 당하는 등 이산의 아픔보다 더 큰 ‘차별과 감시의 천형’을 받아왔다. 이들은 2세까지 불이익을 받을까봐 평생 ‘월북자 가족’이란 사실을 숨긴 채 살아왔고 남북화해 분위기에도 불구, 여전히 피해의식과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아버지가 6·25전쟁 당시 북한측 의용군으로 징집돼 끌려갔다는 김영우(金永佑·50)씨는 “군복무 때 월북자의 자식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밀취급인가증 발급이 취소되고 보병으로 보직을 옮겼다”며 “중동 건설인력으로 취업하려 했지만 해외출국 자체가 금지돼 변변한 직장조차 가질 수 없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오형재(62·서울시립대 교수)씨는 월북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군에서 중도하차하는 서러움을 당했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직후 형의 월북 사실이 드러나자 매일 방첩대에서 찾아와 전역을 종용, 결국 소령으로 옷을 벗었다.
북에 형을 둔 박병연(朴炳連·63)씨는 1957년 공군에 근무할 때 보안대에서 찾아와 “네 형이 월북했느냐.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을 빠짐없이 자술하라”며 수차례 진술서를 받고 감시했다. 그후 자녀에게 해가 미칠까 두려워 형과 관련된 모든 사실을 숨기고 살아야 했다.
이러한 차별과 감시의 고통은 유명인도 예외가 아니다. 언론인 출신으로 국회의원까지 지낸 주영관(朱寧寬·72)씨는 “월북한 동생문제가 드러나 자식취업에 문제가 생길까봐 83년 이산가족찾기는 물론, 대한적십자사에 이산가족 상봉신청도 하지 않은 채 쉬쉬하며 살았다”고 털어놓았다.
이산가족찾기 생방송 진행자 이지연(53·여)씨도 “월북한 오빠 때문에 특무대 요원과 형사들이 1주일에 한번씩 찾아와 괴롭혔다”며 “조카가 직장에서 불이익을 받는 것 같아 최근 뒤늦게 실종자 처리 신고를 했다”고 밝혔다.
일부 월북자 가족은 요시찰대상자로 낙인찍혀 취업도 못한 채 형사들로부터 24시간 감시를 받으며 고통 속에 살아왔다. 부모가 월북한 S(67)씨는 “8촌까지 적용되는 연좌제 때문에 친척들과도 멀어지고 자식들마저 기무사에 끌려갔다”며 “또 무슨 핑계로 고통을 당할지 몰라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다”고 호소했다. 18일 현재 상봉신청자 200여명중 20여명은 아직도 가족이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신원확인 후 언론접촉을 꺼리는 경우도 있어 감시와 차별에 따른 월북가족의 ‘고통의 골’이 얼마나 깊은지를 반영했다.
배성규기자
vega@hk.co.kr
안준현기자
dejabu@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