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 이민자들은 사회 중심부에 뿌리 내리지 못한 자라는 점에서, 때로는 동의어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내면을 전혀 다른 어법으로 그린 두 무대가 찾아 왔다.여성·이민자의 삶 다룬 무대
클래식·태크노등 대비 형식
내용에 따라 클래식적·세기말적 어법, 키치적·포스트모던적 어법으로 대비되는 형식적 실험도 지켜 볼 만하다.
‘나’의 의식은 세 남자에 의해 조각 조각 나 있다. 나와의 관계를 유희로만 생각하는 유부남 이반, 나의 충실한 조언자 말리나, 나를 강간해 온 아버지. 그러나 말리나라는 남자는 실재하지 않는다.
그녀, 즉 ‘나’는 자신을 마모시키기만 하는 관계들에 절망하지 않을 수 없다. 극단 뮈토스의 ‘말리나’.
독일어권 페미니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1971년 작 장편 소설을 각색했다. 충격적 영상 어법으로 영화화해 세계 지성인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기도 했던 작품이다.
이 극은 결국 죽음을 택하고 마는 ‘나’의 비극성을, 남성중심 사회의 여성 일반의 상황 논리로 몰고 간다.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와의 만남’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평소 듣기 힘들었던 클래식 선율 덕택에 극의 긴장감은 배가된다. 쇤베르크의 ‘달에 홀린 피에로’, R. 슈트라우스의 ‘살로메’,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등 현대음악 특유의 각성 효과 때문이다. 창단 10주년을 맞는 이 극단의 대표 오경숙씨가 연출로 나섰다.
김담희 강화정 등 출연. 23일까지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월~목 오후 7시 30분, 금·토 오후 4시 30분 7시 30분, 일 오후 3시. (02)780_6400
다국적 도시 뉴욕에서 소수민으로 산다는 것, 내면에 흐르는 의식의 편린들. 충분히 무거울 법한 주제다.
그러나 다국적 극단 포스트 시어터는 즐거운 한판 멀티미디어 원맨쇼로 그 무게를 헤쳐 간다. 멀티미디어 1인극‘X_isle’. 뿌리 뽑힌 망명객(exile)이기도, 정체 불명(x)의 섬(isle)이기도 한 뉴욕의 소수민 이야기다.
천정의 비디오 카메라로 잡은 실시간 영상을 무대 뒤 대형 스크린에 동시 투사한다. 배우는 영상과도 대화하며 사설을 늘어 놓는다.
불결한 지하방에서 여러 인종과 부대껴 사는 한국 아가씨의 신세 타령이다. 그러나 테크노 뮤직을 타고 나오는 그 수다는 즐겁기까지 하다. 막스 쉬마허 연출, 김지영 출연. 긴밀한 작업 동지다.
1999년 겨울 베를린 초연, 지난 3월 뉴욕 공연 등 해외 장정을 거쳐 이제사 고국을 밟은 무대다. 분단 역사를 테마로 다뤘던 베를린 공연은 폐쇄된 볼링장이, 다인종 도시 뉴욕 공연장은 술집(bar)이 무대였다.
앞서 두 무대는 영어로 진행됐지만, 이번 서울 공연은 한국어 공연.
24~27일 미디어 씨어터 바람. 전반부(오후 7시 30분~오후 9시)는 연극이, 후반부(오후 10시까지)는 음악 담당 단원 에릭 몬스의 신나는 테크노 디제잉(DJ_ing)이 펼쳐진다. (02)3142-1693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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