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측이 통보해 온 명단에 60대가 압도적으로 많은 데 대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게 6·25를 겪은 세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당시 감수성이 예민한 10대 나이로 시대 상황과 이념적 분위기에 휩쓸리기 쉬웠고, 먹여 살릴 처자식도 없어 의용군 입대나 월북이 다른 연배에 비해 특히 많았다는 설명이다.
물론 북측이 비교적 젊은 사람 위주로 명단을 짰을 수도 있다.
북측 명단 200명 가운데 60대는 140명으로 전체의 70%를 차지한다.
세분해 보면 60~64세가 20여명. 당시 10~14세로 지금으로 치면 미성년자에 해당한다.
입학 연령이 지금보다 높았던 점을 감안하면 초등학교(국민학교)학생이거나 빨라야 중학생들이다.
또 65~69세가 120명인데 지금의 15~19세로 중고생이거나 대학 초년생쯤 되는 연배이다.
이를 반영하듯 헤어질 당시의 직업을 학생으로 기재한 사람이 140명의 가운데 절반 가량인 69명이나 된다. 국민학생부터 대학 초년생까지 망라돼 있는데 대략 15~16세의 중학생이 많다.
이같은 상황으로 미뤄 이들 60대를 크게 두 부류로 구분해 볼 수 있다.
해방공간과 한국전쟁의 극심한 이념 대립속에서 어린 나이에 학생운동 등 좌익운동에 참여했거나, 전쟁의 와중에서 의용군으로 입대했다가 북으로 가게 된 경우이다.
국민학교 5학년때 충청도에서 6·25를 겪었다는 박모(62)씨는 “당시에 북측의 그럴듯한 선전 선동에 학생들이 많이 현혹됐고, 한편으론 인민군 치하에서 혹시 불이익을 받게될 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중고등학교 선배들이 의용군에 지원했다”며 “이들 중 상당수가 북으로 가게 됐다”고 말했다.
박진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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