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순이 가까운 할머니는 50년 전 집나간 큰 아들이 북에서 어머니와 형제자매를 찾고 있다는 소식에 그 아들의 빛바랜 중학생 때 사진을 들고 “이것이 꿈이냐 생시냐”를 되뇌며 눈물을 흘렸다. 65세 난 아들의 생사를 반세기만에 확인한 남쪽의 97세 어머니는 “모진 목숨 죽지않고 기다린 보람이 드디어 나타났나 보다”며 재회의 날을 손꼽기 시작했다.분단 반세기, 이산의 아픔은 어느 경우 하나도 구구절절 단장(斷腸)의 사연 아닌 것이 없다. 신혼 6개월만에 북으로 갔던 69세의 김중현씨는 50년간 수절하며 유복자를 키워낸 아내를 찾지 않았다. 북에서 이룬 새 가정과, 아마도 새 삶을 찾았을지 모르는 두고 간 아내에 대한 염려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 아내는 평생 간직해 온 빛바랜 남편의 사진을 꺼내들고 꿈같은 재회를 기다리게 됐다. 16일 판문점을 통해 남북 적십자사가 교환한 8·15 이산가족 교환방문을 위한 북측의 생사확인 대상 200명 명단은 이산의 세월이 너무 길었다는 안타까움을 새삼 일깨운 사연들로 가득했다.
남쪽의 가족을 찾는 이들 북녘 사람 대부분은 6·25를 전후해서 월북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른바 ‘의용군’으로 비자발적 북행 경우도 있지만, 해방공간의 극심한 좌우익 이념 대결과 6·25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자진해서 북을 선택했던 사람들이다. 연령별로는 60대 140명, 70대 56명 등 60~70대가 대부분으로, 이들이 남한을 등질 때는 거의 10대이거나 20대초반의 나이다. 사리를 분별력있게 판단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기 쉽다. 이들은 그동안 월북자 가족이라는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웠던 가족들에 의해 대부분 사망신고되거나, 제사까지 지낸 경우가 많았다.
냉전시대 남에서 월북자 가족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과 마찬가지로 북에서 월남자 가족이 당해야 했던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번 이산가족 교환방문은 그러한 민족의 고통을 씻어버리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또한 서로 다른 체제에 나뉘어 살아야 했던 이산동포들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와야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이런 상봉의 기회가 더욱 보편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상봉은, 원하는 사람들에게 항시 그 문이 열려 있어야 한다. 상봉장소도 제시된 금강산 보다는 판문점이나 비무장지대의 한쪽에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려스런 점은 남북대화를 둘러싸고 우리사회 내부에서 일고 있는 남남갈등 양상이다. 친북이니, 반북이니 하는 정치권의 소모적 갈등이 남북 평화공존과 통일노력에 얼마나 유해한 것인지를 정치권은 깨닫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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