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들이 언론의 잘못된 비리의혹 보도로 명예가 손상됐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해 잇따라 승소하자, 미국 연방대법원의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사건 판결이 새삼 거론된다. 1964년 나온 이 기념비적 판결은 민주사회에서 공직자의 명예보다 언론자유와 공직 비판권이 훨씬 중요하다고 선언한 것이다. 우리와는 언론과 법현실이 다르지만, 바로 그때문에라도 다시 음미할만 하다.■사건의 발단은 앨라배마주 인권단체가 신문에 낸 의견광고였다. 경찰 등 ‘헌법을 위반한 남부인’들이 마틴 루터 킹목사의 흑인 민권운동을 폭력으로 탄압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경찰 책임자 설리번은 신문이 사실 확인없이 명예를 훼손했다며 50만달러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고, 앨라배마주 대법원은 이를 그대로 받아 들였다. 광고내용에 잘못이 있으므로 명예훼손이 입증됐고, 또 원고가 구체적 손해를 증명할 필요는 없다는 판결이었다.
■이를 뒤집은 연방대법원은 공직자 명예훼손은 진실이 아님을 알거나 진실이 아니라고 믿을 이유가 많은데도 확인에 소홀한 언론의‘사실적 악의’와, 명예훼손으로 실제 손해 본 것을 원고측이 입증해야 한다고 새 기준을 천명했다. 국민의 정부비판권을 보호하려면 언론의 실수를 관용해야 하며, 감시기능을 위축시켜서는 안된다는 선언이었다. 또 공직자는 오보를 반박·정정할 길이 열려 있기에, 명예훼손도 개인보다 훨씬 좁게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부 대법관은 설리번과 공직자들의 무더기 소송은 개인의 명예보호장치인 명예훼손소송을 언론견제에 악용한 조직적 음모라며, 아예 공직자 비판보도는 명예훼손 대상에서 제외하자고 주장했다. 법원의 이런 자세가 뒷날 워터게이트 사건보도의 토대가 됐다. 조직의 과오에 침묵하면서 명예심은 충만한 우리 검사들이나, 검찰 비리의혹 보도가 모든 검사 개인의 명예를 해쳤다고 손들어준 법원이 모두 다시 쳐다 보인다. 대전 법조비리 보도 등에서 언론이 분명 지나친 데가 있지만, 내 집안 허물이 크면 남의 손가락질과 웬만한 음해에도 수굿하는게 도리일 것이다.
/강병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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