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21세기는 고령화 시대로 시작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0년 7월 1일 현재 65세 이상 노령인구가 337만1,000명으로 전체 인구 4,727만명의 7%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는 유엔이 정한 ‘고령화사회(aging society)’로 한국이 진입하게 된 것을 의미한다. 인구 노령화는 갈수록 가속도가 붙어 2022년에는 노령인구가 전체 인구의 14.3%를 차지해 ‘고령사회’가 오고, 2032년에는 20%를 넘어 ‘초고령사회’가 올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사회는 모든 측면에서 유례없이 급속한 변화를 겪어 왔지만 인구 노령화는 특히 압축적으로 전개되고 있다.인구 노령화는 사회발전의 핵심 목표 하나가 실현되는 것이다. 고령화 사회는 장수가 보편화하는데 이는 특권층뿐 아니라 일반 서민들까지도 장수의 복을 누림으로써 ‘생명의 평등’이 실현됨을 뜻한다. 그런데 이처럼 중요한 발전의 목표로서 연장된 노년기도 적절한 사회적, 국가적 대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무력하고 고통스러운 하루하루로 채워질 수밖에 없다. 이는 개인적으로 장수하는 의미뿐 아니라 국가적으로 발전을 추구하는 의의가 근본적으로 상실되는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이 70대는 물론인고 심지어 80대, 90대까지 노년기를 살게 되는 것은 우리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에 개인, 가족, 사회, 국가의 차원에서 각각 치밀한 대비를 하여야 한다. 노인문제가 대두되면 흔히 전통 효(孝)이념의 강화가 해법으로서 제시되는데, 평균수명이 30,40세에도 못 미치고 환갑을 넘기는 노인이 극히 드문 시대의 가족부양 규범이 오늘날의 고령사회에서 갖는 효과는 매우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물론 앞으로 노인인구에 대한 다각적인 복지대책을 마련하는데 전통문화의 이점들을 활용하여 세계적으로 모범적인 노인복지국가를 만들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노인들을 단순히 피부양인구로 설정하여 가족이나 국가가 일방적으로 보호하려는 정책은 비용상으로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지탱하기 어렵다. 노인인구 비율의 급상승은 수명연장 이외에 출산율의 급락에 따른 것인데 이는 젊은 세대들이 가족부양의 부담을 가급적 덜기 위해 자녀수를 줄이거나 아예 결혼 자체를 회피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출산율 급락은 젊은 세대에 의한 노인부양도 마찬가지로 어려워질 것임을 뜻한다.
앞으로의 노인문제에 대처해 나감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회적 조건은 인식의 대전환이다. 젊은 세대를 통솔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들의 노동에 의존하는 전통적 노년관이나 젊은 세대 중심의 변화지향적 사회경제체제에서 물러나 소비집단 역할에 머무는 현대적 노년관은 앞으로 거의 모두 고령노인이 되는 사회에서는 부작용만 초래할 뿐이다. 전통적 노년관과 현대적 노년관은 모두 노인인구를 사회의 핵심 생산집단에서 배제하는 공통적인 한계점을 갖고 있다. 앞으로 노인들은 단순히 생존하는 집단이 아니라 사회와 경제에 자율적이고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집단이 되지 않을 수 없다.
21세기의 노인들은 개인적으로 집단적으로 이전의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전혀 새로운 연령대를 살게되는 일종의 ‘신세대’이며 이들의 존재는 사회 전체의 근본 구조와 성격을 바꾸어 놓게 된다. 따라서 노인들은 새로운 시대와 사회를 개척한다는 자세로 노년을 맞아야 하며 이 과정에서 젊은 세대와의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토론을 통해 전혀 새로운 연령간 분업 및 협력 체계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 단순한 수명 연장이 아니라 독립적이고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노년기의 구축이 사회발전의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고령사회는 백색의 도화지와 같으며 어떠한 그림이 그려질지는 전혀 결정된 것이 없다.
/장경섭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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