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은행부문의 부실은 은행부문 자체의 부실, 은행부실과 동전의 앞뒤관계에 있는 기업부실 그리고 은행과 기업의 부실을 야기한 정부부실이라는 세가지 측면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이번 은행파업은 은행부실의 모든 책임을 은행, 특히 그중에서도 은행원들에게 전가하려는 듯한 정부의 태도에 대한 은행원들의 반발이었다고 볼 수 있다.이번 노사간의 합의사항은 예금자보호법의 재검토 가능성, 경영평가위원회 구성을 통한 은행구조조정, 강제합병이 없다는 전제하의 금융지주회사 도입, 관치금융 차단을 위한 제도적 정비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일단 정부는 금융구조조정을 지속한다는 명분을 얻었고 노조측은 인원감축문제가 강제합병 방식으로 진행되기 보다는 금융기관의 자율결정에 의한다는 실리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협상의 결과는 나름대로 되짚어보아야 할 부분이 없지 않다. 내년부터 시행하기로 한 예금자보호한도 축소를 재검토할 수 있다는 부분은 금융시장에 또다른 불확실성을 심어줄 수 있는 요인이다. 경영평가위원회를 구성하여 은행들의 자구계획을 평가하는 것은 또다시 ‘계획 따로’와 ‘실제 따로’의 결과를 다시 한번 반복하는 것에 불과할 가능성이 있다.
관차금융 차단을 위한 총리 훈령 등의 방안을 검토한다고 했으나 관치금융은 법 문제가 아니라 관행의 문제이므로 실제로 불필요한 정부개입이 줄어들지는 의문이다. 그동안 관치금융의 철폐는 수없이 언급되었지만 또다시 총리 훈령이 필요한 것은 오늘날 한국 금융의 현실이다. 노조측에서는 강제적인 인원감축은 시간을 벌었다고 할 지 모르나 오히려 시장에 의한 인원감축의 시기를 앞당겼다고 볼 수 있다.
은행파업과 협상결과를 지켜보면서 우리가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점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금융산업의 구조조정과 경쟁력강화는 우리경제가 당면한 제일의 과제임은 분명하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먼저 금융구조조정이라는 형식은 경쟁력 강화라는 목표와 부합해야 한다. 은행간의 합병이 구조조정 방식이라면 합병은행의 경쟁력 강화는 구조조정의 목표이다. 그런데 정부가 추구하는 은행간 합병이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보장은 없다. 흔히 합병을 강조하는 정부의 논리는 합병을 통한 대형화이다.
그리곤 항상 우리나라 은행중에서 세계 100대 은행에 속하는 은행이 하나도 없음을 예로 든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업중에도 미국을 포함하면 세계 100대 기업에 드는 기업이 없다. 왜 자꾸 은행에만 이러한 잣대를 강요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더구다 소매영업에 주력하는 은행들의 경우 대형화가 반드시 유리하다고만은 볼수 없으며 부실한 은행끼리 합쳐서 대형 우량은행이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한국적인 경영풍토를 감안하면 소모적인 합병논쟁보다는 은행간 차별화에 의한 경쟁력 강화가 더욱 시급한 일이다.
둘째, 은행구조조정과 경쟁력 제고의 주체문제이다. 금융구조조정을 크게 하드웨어적인 부분과 소프트웨어적인 부분으로 구분할 때 정부의 몫은 하드웨어적인 수술이었고 이러한 작업은 1차 은행구조조정에서 대체로 마무리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은행의 소프트웨어적인 조정은 하드웨어적인 조정이 실제로 은행의 경쟁력 강화로 연결되는 부분이다. 이 부분은 기본적으로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아니며 은행의 몫이다. 은행의 소프트웨어적인 개혁은 확실한 개혁주체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은행의 주인을 찾아주는 길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은행의 경쟁력 강화, 관치금융의 철폐, 공적 자금의 조속한 회수도 은행에 확실한 책임 주체가 있을 때 가장 빠른 방법으로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강석훈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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