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븐을 쉽게 치는 레슨프로 K씨는 어느 날 연습장에서 알게 된 한 중소기업인으로부터 골프초청을 받았다. 한 수 가르쳐주면서 용돈이라도 벌라는 배려와 함께. K씨는 내기를 사양하고 전반 9홀을 돌았다. 3명은 기량면에서 핸디캡 10정도였는데 타당 1만원의 내기를 했다. 후반에 접어들자 유혹의 손길이 뻗쳐왔다. 핸디캡 없이 스트로크플레이를 하자는 것이었다.“고수한테 배우는데 맨 입에 되겠습니까? 레슨비를 치른다고 생각할테니 부담가질 필요 없습니다”는 말에 K씨는 내기에 동참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K씨는 모처럼 두둑한 용돈을 만져볼 수 있었다. 한달 후 중소기업인으로부터 2차전을 벌이자는 연락이 왔다. K씨는 이번에도 한달 수입과 비슷한 용돈을 챙겼다. 이런 시절이 몇 개월 이어졌다.
운명의 날은 눈치 채지 못하게 다가왔다. K씨는 아무 부담없이 중소기업인의 골프초청에 응했다. 첫 홀 티잉그라운드에 도착하자 누군가가 판을 키우자고 제안했다. 나머지 2명이 약속이나 한 듯 “좋지!”하고 대답했다. 그동안 챙긴 돈도 있고 해서 다소 미안한 감을 갖고 있던 K씨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럼 한 장으로 하는거야!”이 말에 K씨의 가슴은 두근거렸다. 한 장이라면 타당 10만원이라는 얘긴데 운 나쁘면 그 동안 챙긴 것을 다 털어놓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한편 운이 좋으면 의외의 거액을 만져볼 수 있다는 기대감도 없지 않았다.
첫 홀에서 K씨는 2타를 이겼다. 그런데 그의 손에 쥐어진 것은 20만원이 아닌 100만원짜리 수표 두 장이었다. 이들이 말한 ‘한 장’은 100만원이었던 것이다. K씨는 정신이 아찔했다. 그야말로 거액을 챙길 수 있는 기회와 함께 거액을 잃을 수 있는 위기가 한꺼번에 들이닥치자 그는 극도의 흥분과 초조, 불안에 휩싸였다. 가슴은 뛰고, 맥박은 빨라지고, 얼굴은 달아올랐다. 눈에는 온갖 장애물과 100만원짜리 수표만 어른거릴 뿐이었다.
두 번째 홀부터 K씨의 샷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한 타 실수하면 수백만원이 날아간다’는 강박관념이 그의 모든 근육을 경직시키고 마음마저 얼어붙게 만들어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18홀을 끝냈을 때 K씨는 거의 실신상태에 빠져 있었다. 수중의 돈을 다 털어놓고도 모자라 차용증서를 써야 했다. 그 이후 잃은 돈을 찾기 위해 내기골프에 매달렸으나 이미 판이 커져버린 노름골프에서 소심한 월급쟁이인 K씨는 버틸 재간이 없었다. 살던 아파트를 내놓고 전세로 옮긴 K씨의 그 이후 소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편집국 부국장 mjb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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