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는 정치의 종속변수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그렇다. 한국경제의 ‘보이지 않는 손’은 시장메커니즘이 아니라, 바로 정치메커니즘이다.공유할 수 없는 권력장악을 목표로 하는 정치는 본질적으로 ‘제로섬(Zero_sum)게임’. 그러나 경제는 파이의 확대와 분배를 함께 이뤄야 하는 ‘포지티브 섬(Positive_sum) 게임’이다.
양자간에 일정거리가 유지되어야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 현 경제정책 결정의 난맥상은 정치적 역학구도와 이해관계에 의해 원칙이 춤추고 표류하는 데서 비롯되고 있다.
■정쟁의 뒷전으로 밀린 민생경제 정부는 6월 개원국회에서 세법을 개정, 투신 비과세상품 및 소외계층 비과세저축 도입, 기부금 소득공제 확대 등을 7월1일부터 시행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개원국회는 정치현안에 매여 민생법안은 첫페이지도 열지 않은 채 폐막했다.
여야간 이견도 없고 법안심의에 긴 시간이 걸리는 것도 아니었는데, 정치권은 아예 민생현안엔 관심조차 없었던 것이다. 불과 두달여 전 4·13 총선을 앞두고 뜨겁게 벌어졌던 여야의 ‘중산층·서민 세제지원 확대’ 공약경쟁이 무색하기만 하다.
■경제원리보다는 지역배려 지난해 7월 삼성자동차 법정관리 신청 후 채권단은 돌릴수록 손실만 늘어가는 공장가동은 무의미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부산민심이 들끓었고 김영삼 전대통령(YS)은 부산집회에서 “삼성차 처리는 현 정권의 정치보복”이라며 기름을 한껏 부어댔다.
정부는 실사나 채권단의견 조회없이 ‘공장 계속 가동’ 결정을 내렸고, 부산경제 활성화 대책까지 만들어야 했다. 삼성자동차 허용결정 자체가 정치적이었던 것처럼 그 뒤처리도 지역정서를 의식한 정치적 고려에 의해 이뤄졌던 것이다.
■집단이해 앞에는 속수무책인 정치권 정부는 작년 정기국회에 한전을 6개 자회사로 분할하는 한전민영화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법안이 제출됐다는 것은 당정간 합의가 끝났다는 뜻. 그러나 ‘법안통과 의원은 낙선운동을 펴겠다’는 한전측의 거센 반발에 야당은 물론 여당까지 꼬리를 내렸고, 결국 대내외에 약속한 한전민영화 방침은 지금까지도 표류하고 있다.
현 금융권 파업에 도화선이 된 금융지주회사법에 대해서도 “법제정 필요는 인정하지만 이런 때 꼭 해야 하나”며 미온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법제정에 맞춰 금융지주회사를 준비중인 금융기관들의 혼선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내부구조조정도 맘대로 못한다 한국은행은 98년 구조조정 차원에서 목포·울산·강릉지점 폐쇄방침을 정했다. 그러나 해당지역 국회의원들의 강력한 반발 속에 결국 기능축소선에서 폐쇄계획을 사실상 백지화해야 했다.
■정치논리의 극치는 예산편성 국민혈세를 다루는 ‘신성한 작업’인 예산편성이 정치적 흥정으로 뒤범벅되고 있다는 것은 이미 공지의 사실.
점입가경인 것은 국회예결위를 올해부터 상설화하면서 소속의원들은 1년에 한번씩 모두 교체키로 했다는 점.
명분은 모든 의원에게 예산·결산심의 기회를 준다는 것이지만 뒤집어보면 모든 의원에게 임기중 한번은 지역민원을 해결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준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부 당국자는 “예산편성시 정치논리만 배제된다면 균형재정은 이미 달성됐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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