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안전 신화’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 잇따른 사건·사고로 완벽 치안과 무사고의 자랑이 이미 깨진 가운데 이번에는 마지막 보루인 식품 안전까지 흔들리고 있다.이달 들어 일본 열도는 '유키지루시(雪印) 식중독 사건’으로 발칵 뒤집혔다. 대표적 유업회사인 유키지루시의 오사카(大阪)공장에서 생산된 저지방유 등 유제품이 황색포도상 구균에 오염, 소비자들이 집단 식중독을 일으켰다. 6일까지 식중독 피해자는 1만1,376명에 이르러 사상 최대 규모에 이르렀으며 이중 160여명이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다.
경찰이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조사에 나선 것은 물론 행정 당국이 전국의 유제품 제조시설에 대한 일제 점검에 들어갔다. 도쿄(東京)도는 5일 유키지루시 히노(日野)공장의 3개 저장탱크 가운데 세정 작업 기록이 없는 탱크 하나의 사용 중지를 명령했다.
회사측은 당국의 지시에 따라 오사카공장을 폐쇄하고 생산된 유제품의 전면 회수에 나섰다. 그러나 식중독 피해가 발생한 간사이(關西) 지역은 물론 전국적으로 유키지루시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거부가 잇따라 유키지루시는 창업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1925년 창업한 유키지루시는 우유와 요구르트, 아이스크림 등을 생산·판매하고 있으며 종업원 약 7,000명과 22개 계열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이시카와 데쓰로(石川哲郞) 사장은 당국의 처분과 피해자 보상 방안이 나오는 대로 사건의 책임을 지고 사임할 것으로 보인다.
회사와 보건 당국의 조사 결과 재이용을 위해 남은 우유를 저장탱크로 보내는 가설 파이프의 밸브가 엉성한 세정 작업으로 황색 포도상 구균에 오염된 것이 원인으로 밝혀졌다.
문제의 파이프와 밸브는 작업후 반드시 물로 씻고 주1회 분해해 살균 처리해야 한다는 작업 규정을 종업원들은 대부분 모르고 있었고, 감시·감독의 소홀로 실제로 거의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3월 이바라키(茨城)현 도카이무라(東海村)의 방사능 누출 사건과 똑같은 불감증으로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당국의 굼뜬 대응도 마찬가지였던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지난달 26일 정오께 한 어린이가 구토와 설사를 호소했으나 보건 당국의 유키지루시 유제품 주의령은 피해자가 200여명으로 늘어난 28일 오후에야 나왔다. 세균 검출은 30일에나 이뤄졌고 제품 회수는 29일 오전에 결정됐다. 그 사이에 피해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났다.
현장의 안전 불감증과 늑장 대응이 일본의 안전 신화를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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