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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롭게 바라본 통일방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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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롭게 바라본 통일방법론

입력
2000.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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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15일 남북 정상이 역사적인 공동선언문을 낭독할 때 우리는 놀라움과 감격으로 몸을 떨었다. 그동안의 ‘개혁 피로증’은 하룻밤 사이에 가셨고, 북한 내 기아문제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으며, 남한의 지역감정이나 외국인 노동자의 고통 또한 열띤 축제분위기 속에서 깡그리 잊혀졌다.일상적인 사고에까지 스며든 반공주의 지적

근거없는 낙관 버리고 북한 바로알기 나서야

그 포만감, 그 성취감…. 과연 ‘통일의 그날’은 벌써 이만큼 우리 곁으로 다가온 것일까?

책은 이러한 분위기에 착잡해 하는 지식인 들의 통일 이야기이다. 이들은 “민족을 하나로 모은다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는 통일만능론, 군사력이나 외교력 또는 경제력과 같은 힘의 논리에 젖은 통일구호에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

이들의 정교한 시각은, 이 책이 1996~99년 ‘남과 북:문화통합’이라는 ‘오래된’ 한 학술 프로젝트의 결과물 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유효하며 설득력이 있다.

오히려 2, 3년을 앞서간 이들의 생각은 남북정상들의 포옹 장면을 목격한 지금에서야 이해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먼저 대전대 정치외교학과 권혁범교수는 여전히 우리 일상을 지배하는 남한내 반공주의에 주목한다. 전국 곳곳에 산재한 ‘반공 표어’가 그 분석대상이다.

북한의 침략에 대한 물리적 공포를 환기시키고(‘붕괴직전 북한체제 대남도발 경계하자’), 반공을 함으로써 얻게 되는 이익을 강조하며(‘빈틈없는 대공태세 안정속에 국가발전’), 전체주의적 국민관을 노골적으로 요구하는(‘설마하는 방심속에 불순분자 스며든다’) 것이 바로 반공 표어라는 것이다.

그러나 권교수가 말하는 문제의 핵심은 이러한 표면적 이유가 아니라, 표어로 요약되는 반공 이데올로기가 우리의 일상적 사고에까지 깊게 스며들었다는 점이다.

즉 반공 이데올로기는 모든 비판적 생각이나 운동을 ‘좌익’ ‘불순’ ‘용공’으로 몰며, 기존 질서와 관행에 대한 어떠한 도전도 불순의 혐의를 받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렇게 ‘사회적 저항과 갈등을 은폐하고 분단체제를 유지하는 장치’로서 반공주의가, 그 반공주의적 세계관이 우리 일상을 지배하는 한, 통일은 단순한 영토적·정치적 통일에만 머물 것이라는 게 권교수 주장이다.

전효관 서울시haja센터 부소장은 시인 고은, 지리학자 최창조, 소설가 이호철 등이 최근 북한을 방문한 뒤 쓴 ‘방북기’를 중심으로 남한 사람들 눈에 비춰진 북한의 이미지를 재구성한다. 논의의 대상은 여성의 이미지로서 북한이다.

“오냐, 어서 오거라. 어서 와 나를 마음껏 바라보고 가거라. 대동강은 그렇게 말하는 할머니고, 어머니고, 누님인 근친이자 동시에 끝없이 그 유혹에 빠져들어야 할 낯선 이성(異性)이었다.”(고은)

저자는 북한을 여성으로 이상화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상화하는 그 주체가 바로 남성이라는 점이 문제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남성’이란 남녀의 사회적 불평등 속에서 자리를 확실히 꿰찬 ‘승리자’로서의 존재이다.

북한의 현실을 바라보는 그 정서의 밑바탕에는 남북한간의 경제적·문화적 격차로 인한 ‘승리자’로서의 동정과 책임의식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거드름을 피우며 북한을 바라본다는 저자의 주장에, 우리는 과연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래서 이들의 관심은 ‘북한 문화 바로 알기’로 넘어간다. 통일연구원 북한사회인권센터 이우영 연구위원은 그 대상으로 북한 영화를 선택했다. 남한 영화와는 다른 존재로서 북한 영화이다.

여기에는 ‘북한 문화의 점진적 개방→남북문화 교류→상호 이해 증진→남북한간 이질성 극복과 동질성 회복→통일문화 구현’이라는 ‘그럴듯한’ 통일과정은 불가능하다고 보는 저자의 생각이 스며들어 있다.

왜? ‘나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우리의 문화적 풍토에서는 통일문화라는 것은 제국주의적 통합에 불과하며, 통합돼야 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돼야 하는 존재로서 북한 문화를 제대로 살필 줄 알아야만 진정한 문화 통일이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저자는 ‘조국의 별’ ‘로동가정’ ‘민족과 운명’ ‘피바다’ ‘꽃파는 처녀’ ‘임꺽정’ 등 많은 북한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무엇보다 영화를 포함한 북한의 문화·예술이 사회주의 체제에서 탄생한 것임을 강조한다.

개인이 생산수단을 소유할 수 없는 사회주의. 개인들이 열심히 일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윤리적인 동기밖에 부여할 것이 없는 북한에서 탄생한 영화는 기본적으로 ‘선전 선동’을 목표로 한다는 것.

따라서 북한 영화에서 정치적 선전구호가 나오는 것을 보고, 우리와 다르다고 해서 이를 비난하고 폄하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은 참으로 설득력이 있다.

그러면 ‘통일의 그날’을 기다리는 우리의 시각은 온통 잘못되고 막연한 것일까? 연세대 사회학과 조한혜정 교수가 그 쐐기를 박는다.

그는 ‘반만년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하나의 민족’이라는 신념에 바탕을 둔 낙관주의는 근거없는 낙관이라고 몰아 세운다. 5,000년 역사를 공유했다는 ‘이미지’로 분단 50년 역사를 지우려 하기보다는, 그 50년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귀순자’라는 용어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한다. 원래 이 말은 ‘반항심을 버리고 순종한다’는 의미인데, 탈북자들은 외부세계와 접촉을 통해 북한 사회의 불합리를 알게 돼 탈출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 사람들을 ‘불쌍하다’ ‘촌스럽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역사가 단선적으로 진보한다고 보는 단순한 진화론이자, 자본주의적 발전을 모델로 그 모델에 가까울수록 세련된 사회가 된다는 근대화론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내놓는다.

결국 이들의 모든 주장은 ‘통일의 그날’을 염원하면서도, ‘나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전체주의 사고에 젖어있는 우리에게 보내는 신랄한 비판이다. 그것은 동시에 다양한 시민의 열망이 아니라, 자본의 논리로 하루아침에 하나가 될 ‘그날’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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