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봄 대학원생이었던 제리 양은 스탠퍼드대 캠퍼스의 조그만 사무실에 앉아 컴퓨터와 씨름하고 있었다. 당시 개발된 모자이크 웹 브라우저를 뒤적이며 괜찮은 홈페이지들을 이리저리 분류하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그리고는 뉴스, 건강, 과학 등 13개 분야로 분류된 그 계층구조를 ‘제리의 모자이크 빠른 검색’이라 이름붙였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몰랐으리라. 이 계층구조가 훗날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시가 440억달러로 평가받는 인터넷 최대의 검색사이트 ‘야후’가 되리라는 것을.
실리콘 밸리. 하나의 국가로 치면 전세계 12대 경제대국 안에 들어가고, 어제의 주식시장 종가에 따라 하루에 수백명의 백만장자가 생겨나는 곳. 야후의 제리 양을 비롯해 ‘은하계 최대의 갑부’ 빌 게이츠, 넷스케이프의 설립자 짐 클라크, 월드와이드웹의 창시자 마크 앤드리슨의 신화가 살아 숨쉬는 그 곳을 세계적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의 기자가 직접 발로 뛰었다.
책은 실리콘 밸리와 그 거주자들의 역사를 편년체로 추적한 정사(正史)이면서, 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과 여성편력, 음모와 야합까지 다룬 야사(野史)이다.
저자는 우선 보통 사회와는 전혀 다른 실리콘 밸리의 역사와 문화를 꼼꼼하게 탐방한다. 1939년 1월 1일 빌 휴렛과 데이비드 팩커드가 동전을 던져 자신들의 회사 이름(휴렛-팩커드)을 정한 이야기부터, 최근 마이크로소프트(MS)사가 워싱턴연방 지방법원으로부터 4개월내 2개 회사로 분할하라는 명령을 받기까지. 저자가 묘사하는 밸리의 역사는 화려하고 숨가쁘기만 하다.
하지만 실리콘 밸리를 바라보는 저자의 기본 시각은 상당히 부정적이다. 오죽하면 빌 게이츠의 MS사를 ‘악마의 제국’으로 표현했을까? 인터넷 브라우저 시장에서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가지고 있던 넷스케이프사를 죽이기 위해, 자사의 익스플로러를 무료로 배포한 일 등 빌 게이츠가 저지른 ‘만행’들을 낱낱이 파헤친다. MS의 분할 판정은 ‘정의는 살아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는 주장과 함께.
그러면서 밸리의 또다른 암울한 면을 제시한다. 80%가 넘는 이혼율, 일에 미쳐 휴가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 무엇보다 심각한 자아도취에 빠진 실리콘 백만장자들의 냄새나는 삶. 저자는 결론을 내린다. “실리콘 밸리는 세계를 변화시켰다.
앞으로 다시 한번 세계를 변화시킬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밸리에는 더 이상 영혼이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김관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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